대통령을 설득하다.
“대통령님!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에 추호의 거짓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들어주십시오.
또한 차후에 제 말에 관련된 모든 증거도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세대째 피고 있는 담배연기를 훅 뿜었다.
“그러지! 거짓말 하면 바로 추방이라고 협박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그건 협박 맞아요, 대통령님!
“전 21살에 미국 M공대에서 물리학과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저와 연구하던 Y대학 김형우 교수님을 떠나 주식회사 그래비티 초대 연구소장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나의 긴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래비티의 모든 기술을 나와 김형우 교수가 개발했다는 부분부터 대통령은 놀라기 시작했다.
김형우 교수와 나의 특허가 어느 순간에 그래비티로 넘어가 있었다는 이야기에서는 반신반의했다.
태양회로 넘어와서 정부 각 기관에 스며든 인원들을 이야기 했고, 그 면면이 대한민국 국가대표 비리인사들이란 점, 그 중에 심지어 자신이 임명한 장관까지 들어가 있는 부분에서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어제 밤의 이야기를 끝으로 나의 짧은 일대기를 정리했다.
“대통령님, 모든 사람들이 그래비티를 중심으로 엮여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의 백룡회란 조직도 그렇습니다. 그래비티가 돈줄이겠지요. 하지만, 그래비티가 왜 국제적인 불법조직과 관여되어 있는지를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중국쪽으로 기술이 새는 것 아닌가 강한 의심이 있었지만, 당장 확실한 증거가 없어 감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대통령은 줄담배를 피워댔다. 벌써 마지막 한 개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넓은 대통령 집무실이 너구리 굴이 된 것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일까.
“박민서군, 조중호 어디로 빼돌렸나? 정말 바다에 빠져 죽은거 맞아?”
‘조중호는 죽었다, 조중호는 죽었다.‘
난 스스로에게 이게 진실로 믿어질때까지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죽은거 맞습니다.”
나의 정직한듯한 눈길과 연기에 대통령이 넘어간 것 같았다. 적어도 넘어간 듯 보였다.
“그래? 후~~. 앞으로 어쩔 작정인가? 그놈들 끝까지 쫓아 다 죽일 작정인가?”
“네!”
난 과감하게 대답했다.
“야 임마!!”
아 깜짝이야. 성질 더럽다더니...
“야! 여긴 엄연한 법치국가야. 대한민국이 우습냐? 아무데서나 총질해도 될 것 같아? 니가 무슨 포켓몬 트레이너냐? 눈만 마주치면 전투야?”
손자들과 어울리려는 처절한 할아버지 티를 팍팍 냈다.
“그게 아니라요. 제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시스템 안에 있는 인간들을 못 믿는다고요. 벌써 판사, 검사, 경찰, 국정원, 국회의원, 뭐 하나 믿을놈이 없잖아요!!!”
나도 말이 막 나갔다.
“우리나라?”
말 꼬리 잡는거 제일 싫다.
“아 씨! 그럼 피가 어디가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호하는 대한민국을 왜 그 안에 사는 인간들이 보호 못하냐구요!!!”
소리치는 나를 어이없는 듯 쳐다 보더니,
“크하하하하하!!
한국사람 맞네!“
이건 일국의 대통령과 일국의 대사와의 대화가 아니었다.
뭐, 계급장 떼니까 편하긴 하다.
“대통령님! 태양회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익에 해가 됩니다. 그래비티는 김태석 것이기 이전에 제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전 자식이 잘못되는 꼴 못 봅니다.
그리고, 한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제가 개발한 기술을 대한민국에 최대한 이익이 되도록 쓸거란 점입니다. 물론 짐바브웨에도 도움이 되도록 할 겁니다. 파세나이트 생산국인 짐바브웨는 한국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대통령이 돗대를 껐다.
“그래, 내가 뭘 해 주면 되지?”
머리가 복잡해진 나도 갑자기 안 피는 담배가 마려워왔다.
“우선 국정원과 경찰, 검찰에서 태양회에 물들지 않은 사람을 뽑아서 대통령 직속 TF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적은 전략기술보호 및 태양회 관련 위법사항 조사로 하죠. 물론 비공개로 해야 하구요. 백룡회와 태양회가 감히 국내에서 총기를 쓰는 걸 주저하지 않는 걸로 봐서 테러나 총기사용에도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니 경찰특공대도 필요하겠네요.”
대통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있을 테니 난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생각을 정리한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 건은 안보실장과 나만 아는 걸로 하지.
하지만 네가 말한 거 다 크로스체크 해 본다. 불만 없지?”
“네, 불만 없습니다. 제가 수집한 증거는 대통령님께 바로 가져 오겠습니다. 그리고 TF 상황실은 저희 대사관 내에 설치하는 걸로 하시죠. 거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보안이 잘 되는 곳입니다. 솔직히 대통령실도 못 믿겠습니다.“
기분이 나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이 현실이니만큼.
“새끼, 꼭 말을 해도 그렇게 아픈데를 콕콕 찔러가면서 하냐! 알았어! 그런데..., 제발 아무데서나 총질 좀 하지마라! 너희 대사관 무기 다 신고한 거 맞어?”
이 아저씨 막 나간다, 게다가 뒷끝 작렬이다. 이러다 무기 검수 나오겄다.
“각 나라마다 감추고 싶은게 다 있습니다. 미국 대사관이라고 무기 다 신고했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적이 쏘는데 안 쏘면 죽잖아요? 정 당 방 위, 아시잖습니까?“
이제는 말대꾸도 안 하고 손을 훠~이 훠~이 저으면서 귀찮다는 듯 나가란다. 힐스보로우 총리한테 확 고자질 해야겠다.
난 아직 할말 많은데...
“그리고 그래비티 말인데요.”
내가 말을 떼자 대통령도 생각난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거냐? 그래비티 망하게 할거야?”
난 품속에 있던 그래비티 실제 주주명단을 꺼내 대통령 눈앞에서 흔들어 댔다.
“이거 보세요. 그래비티는 처음부터 뭔가 잘못된 인간들이 각종 이권이나 챙기는 기업으로 전락해 버렸어요.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본주의. 그렇지. 정말 좋은 제도다. 돈과 능력이 되면 불법 빼고는 다 가능하다. 남의 회사 꾸울꺽 집어 삼키는 것도, 경쟁상품 출시해서 망하게 하는 것도.
“어떻게 할 건데?”
“너무 많은걸 아실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건 순전히 민간영역인데요?”
“응, 국가전략기술이야.”
“전략기술 가진 회사가 꼭 하나여야 합니까?”
“많을수록 좋기는 한데, 안에서 너무 치고 받으면 곤란하지.”
“그럼 제가 그래비티 흡수합병하겠습니다.”
“국익에 금만 가도 너 추방이다, 알지?”
봐라. 결국은 추방이라는 협박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가.
“제가 국적 회복 신청하면 되죠.”
“그 회복신청 결재권자가 법무부 장관이던가...?”
“그래비티보다 100배는 커질건데 그걸 마다하시겠다고요?”
“그건...”
나 같은 애국시민에게 그딴 협박은 안 통합니다요, 대통령님.
“그러니까요. 제가 한국은 기술, 짐바브웨는 원자재. 이런 구도로 딱 각잡고 만들거라니까요.”
“내 임기내에 할거지?”
“그래야 하나요?”
“그게 나한테는 콩고물이지. 딴거 원하는거 없다.”
업적. 5년짜리 장기알바 이후에 연금생활 바로 들어가야 하는 공무원인데, ‘나 때 말이야 이런거 했다고‘라는 라떼 타령이라도 마음껏 할 수 있어야 낙이지.
내가 생각하느라 아무 말이 없자 대통령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야, 내가 주식을 달래냐, 돈을 달래냐? 내 임기동안 확실한 업적 하나 만들어보겠다는데, 그 정도도 못 해 주냐? 대통령이 말이야. 알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불쌍한 직종이야. 맨날 처맞지, 일거수 일투족 감시당하지, 심지어 표정도 마음대로 못지어, 임마. 정말 고용주한테 찍 소리도 못하고 노예생활 해야 하는 직원 같다고.“
쌓인게 많았는지 새 담배갑을 뜯어낸다.
뭐, 비슷하긴 하다. 마음대로 퇴사도 안 되고, 한두명도 아니고 5천만 사장들한테 매일 뜯기고...
“아, 알겠어요. 임기내에 최대한 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만.., 근데 이 양반 임기가 몇 년 남았더라...?
담배를 뻐끔거리며 벗겨진 머리까지 빨개진 앞의 아저씨가 좀 불쌍해 보이긴 했다.
“그리고 김태석..., 진짜 죽일거냐?”
도돌이표다. 아까 법치국가라고 법대로 해야 한다고 소리 지르지 않았던가.
“일단 망하게 하고 나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다.
“너 말이야..., 반군에 너무 오래 있었어. 야생의 법칙만 존재하는 곳에서 문명인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보인다.”
21세기 세계시민의식으로 충만한 나에게 무슨 엉뚱한 말씀인지 모르겠다.
“헛생각 하지 말고 잘 들어. 너 그러다 같은 괴물 돼. 어쨋거나 난 경고했다. 더 괴물 되기 전에 적당히 끝내라!“
난 이미 괴물이 되어버렸다. 내 손으로 죽인 사람이 몇인지 세는 것도 몇 년전에 그만뒀는데.
그래도 길가다 만난 사람도 아니고 저 양반이 말하니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감은 있다.
‘대통령님, 좀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
억지로 나를 일층 현관까지 배웅하는 비서실장의 눈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대사님! 한번만 더 어제밤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돌이키지 못할 결과가 올 겁니다. 정중히 경고드립니다!“
경고도 참 정중하긴 하다. 이 아저씨 인상 안 좋은게 혹시 태양회 아냐?
나도 손을 훠~이 훠~이 저으면서 들어가 보라고 했다.
이를 빠득 가는 비서실장을 보면서 얼른 치포가 현관 앞에 댄 차에 올라탔다.
대사관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실 인원들을 불러모았다.
“유미나 실장은 잘 모르겠지만, 차차 알려드릴게요. 우리가 조사하던 태양회와 그래비티 관련 일을 대한민국 정부와 정식으로 합동 TF를 만들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폭탄 선언에 모두가 놀라는 게 보였다. 특히 머리가 빠른 정재석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적진에 침투해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주가가 팍팍 올라갈 걸 직감했나 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나는 면박을 줬다.
“우리 중에 정재석이 니가 제일 먼저 죽을 수 있어. 그러니까 치포한테 총 쏘는 거 배우고, 권총 정도는 항상 가지고 다녀!”
이 새끼 내 말을 지 멋대로 해석하고 또 감동한 표정이다.
“캡틴! 역시 저를 가장 생각해 주시는 군요.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군인은 전장에서 죽는 법. 어찌....”
“야, 시끄럽고. 죽는다는 재수없는 말은 취소다. 너도 그런말 하지 마라! 하여간, 여러분은 한국측이든 우리쪽이든 TF 팀에 다 들어갈 거니까 파견 명령 떨어질 겁니다. 이곳 대사관에 TF 상황실 만들 겁니다. 그리고 이현희 경감님, 곧 복귀되시겠죠?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짝짝짝
모두가 박수를 치자 이현희 경감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특히 대사님, 그리고 민태완 요원님, 그리고 치포 그웬지 실장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여자 또 울려고 그런다. 나하고는 말이 잘 안 통하니까, 특히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더더욱 말 많이 붙이면 안된다.
유미나 실장은 거의 모든 작전에서 제외되어 왔었기에 내용을 몰라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한게 많나 보다.
“저..., 대사님. 오늘 대통령님하고는..., 괜찮으셨어요?”
“아뇨! 또 쌍욕 퍼부으시더라구요. ‘야 임마‘ 소리도 들었고, ’새끼‘ 소리도 들었어요. 반말도 찍찍 하시고, 입이 굉장히 거치시더라구요. 성질도 더럽고.”
이렇게 난 안티를 몇명 만들어 버렸다. 특히 정재석에게는 직빵으로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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