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악(惡)
대사관에 같이 온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요원 민태완은 자신이 넘긴 USB를 분석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옆방에 있는 킹사이즈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에 빠졌다.
“캡틴, 민태완씨가 캡틴이 아프리카로 가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캡틴의 어머니를 쫓아다녔네요.”
민태완이 찍은 사진과 보고서들을 보면서 이찬이가 설명했다.
“산업기밀보호가 임무니 어떤 잡음이 생기더라도 일단 조사는 하는게 일이었을테니까.
우연히 걸린거지.“
아마도 그래비티가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되고, 어머니가 1인시위를 하고 언론사에 탄원을 하면서 민태완의 눈에 걸렸을 것이다.
당연히 민태완은 나에 대한 정보도 얻었을 것이고, 미심쩍다고 생각하고 계속 추적을 해 왔던 것 같다.
조중호가 조폭들과 만나는 사진들이 있다해도 내 어머니 살해에 대한 정황증거는 될 수 있지만 직접 증거가 되지 못한다.
물론 사진 중에 조중호가 어머니가 칼에 찔리는 상황을 사람들과 섞여 바라보고 있는 사진도 있지만, 끝까지 자기는 우연히 그 조폭들을 만난 거라고 잡아떼거나, 폭력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겨를이 없었다거나, 하여간 말 같잖은 변명을 해도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에 조중호가 유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난 확실하게 놈을 잡을 뭔가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을 조금씩 구석으로 몰아부쳐서 실수를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차기자님!
이제 사진 있으니까 이현희 경감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는 정도의 증거는 갖춰졌다고 생각합니다.
놈이야 어떻게든 빠져나가겠지만, 어떻게 나오는지 보게 기사 내자구요.“
차기자는 미리 작성해 놨던 이현희 경감에 대한 기사에 사진을 첨부했다.
이 기사는 현직 경찰청장이 살인을 지시했다는 늬앙스를 가진 큰 의혹 기사였다.
비난은 면할 길이 없을 것였다.
차기자가 쓴 헤드라인과 별개로 다른 언론사들은 이런식으로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조중호 경찰청장 살인지시?
아니면 살인방조인가?
-이현희 경감은 무죄인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시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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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으로 기자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조중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의 차로 걸어가는 동안 수백명의 기자떼가 질문을 퍼부었다.
“청장님, 정말 살인을 지시하셨습니까?”
“한 여성이 죽어가는데 왜 경찰을 부르지도 않았습니까?”
“이현희 경감에게 누명을 씌우신 겁니까?”
조중호는 거슬리는 질문을 한 기자들을 한번 째려보고는 말없이 그들을 밀치며 차에 올랐다.
“씨발, 개새끼들!!”
그의 전화가 쉴새없이 울려대고 있었지만, 번호를 확인하고는 넘겨버렸다.
차수진 기자년을 없애는 건 이미 늦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이 사태를 수습하는게 먼저였다. 그래서 어르신 중 한명인 차일도 여당대표를 만나러 급히 C 호텔로 가는 중이었다.
C호텔 컨퍼런스 룸에 도착한 그는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문 앞에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50명은 들어갈 듯한 방 한가운데에 소파가 놓여있고 여당대표가 앉아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중호가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조 청장, 어서 와요.”
나긋한 목소리로 차일도 여당대표가 조중호에게 자리를 지정해 줬다.
맞은편에는 조중호도 모르는 자가 앉아 있었다.
차일도는 조중호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소개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조청장!
우리가 조청장 통해서 그래비티에 투자를 하고, 나서 요즘처럼 시끄러운 적이 없었지요?“
조중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조중호는 얼른 차일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일단 이번 일은 검찰과 법원에서 잘 처리할 겁니다. 그리고 여론은 다른 방향으로 앞에 계신 이 선생이 몰아 주실 거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차일도가 잔을 죽 들이키고 탁자에 놓자, 조중호가 다시 잔을 채웠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앞에 앉은 이선생이란 사람이 패드를 꺼내 앞에 내밀었다.
W호텔에서 민서가 중국인과 조중호를 쫓아가서 총격이 벌어졌던 현장이었다.
민서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조중호가 놀라 패드를 낚아채 다시 얼굴을 확인했다.
“박민서!!!”
“어쩐지 이번 기사도 박민서가 엮여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 회원중 K 채널 함병호 회장이 내부 지분싸움에 패배해서 물러났어요. 우린 그것도 박민서가 연관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새끼가, 그렇게 많은 돈을 처 받고...”
차일도는 여전히 여유롭게 술잔을 기울였다.
“뭐, 사람 사는게 그런거 아니겠어요?
박민서가 조금 큰 걸림돌이 되겠어요.
파세나이트를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없애지도 못하고, 안 없애자니 걸림돌이 되고...
어쩐지 우리가 외통수에 걸려든 것 같내요.“
조중호는 머리를 굴렸다. 그도 그렇게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천재에 가까웠다.
경찰대학을 다니는 동안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경찰에 있는 동안도 행정력과 통솔력을 발휘해서 탁월하게 조직을 이끌었다.
“어르신, 지금 파세나이트는 전량 그래비티에서 구매합니다.
짐바브웨도 독점공급을 하지만, 유일한 고객인 그래비티를 어쩌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박민서를 없애버린다 해도 짐바브웨 정부 입장에서는 저희에게 계속 파세나이트를 판매해야 국가경제를 계속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차일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관점을 바꾸니 그렇게 보이는군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잡아와서 적극적으로 설득해 보고 없앱시다. 투자 가치는 있는 놈이니. 뭐, 저항이 너무 심하면 할 수 없구요.“
조중호는 반드시 놈을 죽이든 잡든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실상 그의 생각에는 박민서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파세나이트 가격을 올린 것, 자신과 상당히 친했던 K 채널 함병호 회장의 낙마, 이번 사진과 기사.
이어서 최영대 한국항공의 사고 재판 판사가 사라진 일과 새로운 증거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항공이 코너에 몰린 점까지 박민서의 작품일지 모른다는 소름돋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서는 위험한 놈이다. 갈기갈기 찢어죽여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박민서의 애미를 죽인 사실을 박민서가 알고 있는데 그게 용서가 될리도, 태양회와 협력관계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죽이자!
이게 그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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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완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요원, 웃기고 있네. 씨발!
이 놈은 제 2의 정재석이었다. 아니 정재석 곱하기 10인 골때리는 놈이었다.
무려 대한민국 국정원 직원이 멀쩡한 남의 나라 대사관에 버젓이 눌러앉아 고급음식과 킹사이즈 침대를 차지하고 기생하고 있다.
자기는 그래비티와 관련된 국가전략기술 보호를 위한 공무수행 중이라면서.
오늘은 즐겁지 않은 토요일이다. 토요일은 정재석이 오는 날이었다. 재석 하나만 해도 버거운데 민태완까지 합쳐지면 안봐도 뻔하다.
“캡틴! 저 왔어요. 지난 일주일동안 기체후 일향만강하셨습니까?”
“어? 어. 왔냐?”
근성근성 답했다. 지난 4800만원짜리 피규어 사태 이후로 나의 화는 덜 풀렸다.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했다.
재석은 그날 내가 피규어를 다 환불할까봐, 자기 차에 꾹꾹 눌러담고 잽싸게 자기 집으로 옮겨 버렸다.
“아~~~~~~ 함~~~!!”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민태완이 까치집을 튼 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야, 민태완! 국정원 직원들은 다들 깔끔하고 매사에 칼 같은 걸로 아는데. 국정원 이미지에 똥칠을 해라!”
국정원이라는 말에 태완을 처음 본 재석이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캡틴의 영원한 단짝, 정재석이라고 합니다.“
민태완이 언겁결에 악수를 한다.
“어~ 저는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민태완이라고 합니다.”
“오오오오~~! 국정원 요원!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 캡틴 좀 많이 도와주세요.
그럼 오리엔테이션 하셔야죠. 따라 오세요!“
“응? 무슨...? 오리엔...”
정재석이 민태완의 손을 끌고 나가버렸다.
난 찬이, 치포와 함께 한가한 토요일 아침을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보내고 있었다.
삐~삐삐삑!!
찬이가 PC와 연결된 헤드셋을 꼈다.
김태석이나 조중호가 통화를 하면 신호가 뜨고, 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을 수 있도록 스마트폰 자체가 도청장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데 공이 제일 컸던 건, 인정하기 싫지만, 정재석이었다.
도청 내용을 듣던 찬이가 스피커로 소리를 돌렸다.
“그래 박민서 그새끼 없애버려!
이번에는 작살을 낸다. 무슨 수를 써도 좋아. 내가 다 막아줄테니 반드시 죽여!
너희 백마파 다 동원해도 좋아“
“청장님!
지난번에 이현희 죽일려다 우리가 당했잖습니까? 그 때 애들 둘이 팔 잘렸구요. 그 때 갔던 애들이 그러는데, 이현희 구하러 온 두 놈 중에 하나가 흑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놈들이 박민서하고 부하 아닐까요? 그 TV에도 나왔잖습니까? 치..치..치파였나? 하여간 그놈요.
애들이 그때 본 두놈이 야차같았다고 좀 겁을 먹었습니다.“
조중호가 소리쳤다.
“뭐? 그것도 박민서였어? 씨발~!!
야, 김우진이 개새끼야! 그래서? 겁먹어서 못하겠다는 거야? 내가 네놈들 사업 봐준게 얼만데? 안 할거면 중국애들한테 말해?”
김우진? 이 놈이 백마파 두목인가 보다.
거기에 중국? 조중호는 중국 인물들을 알 가능성이 있다.
김우진의 음성이 겁 먹은 듯 들렸다.
“아이고, 아닙니다 청장님. 저희들이 겁은 무슨. 하겠습니다.”
“저번 이현희처럼 놓치면 끝일줄 알아. 새끼야.”
백마파가 항변하듯이 말한다.
“그래도 이현희 남친놈이랑 그 다른 경찰년은 잘 처리했잖습니까. 결국은 이현희 년이 다 뒤집어 썼잖아요.
이번에도 믿으십시오. 꼭 처리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이현희에 대해서는 입 조심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주절대고 있어! 나 갈테니까 확실히 처리해!”
하 새끼! 알아서 다 불어주네. 이현희 경감에 대해서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불어주니 정말 기분이 좋다. 게다가 나를 노린 공격대까지 보내주시겠다니 환영할 일이었다.
찬이와 치포도 대화 내용의 살벌함과는 달리 활짝 웃고 있었다.
“찬이야! 장소가 어디야?”
“자영동 백마빌딩입니다. 백마개발이 쓰고 있네요. 주소 폰으로 보낼께요.”
깡패들이 개발은 무슨...
백마파 광고판을 붙이지 그랬냐.
“치포, 이번에 우리가 먼저 치자! 전화통화한 저놈이 두목일거니, 그놈은 생포하고.
찬이는 백마개발 주요인물 사진 있으면 좀 뽑아줘.”
“캡틴, 총 가져가서 쓸어버리자고!”
치포는 무슨 총을 못쏴서 환장하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툭하면 대사관 실내 사격장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그걸로 해소가 안되는 모양이다. 저것도 너무 전장에서 오래 구른 PTSD의 일종인가...
“치포, 그냥 권총 한정만 가지고 가자. 근데 그거 쓰면 골치 아파져. 그러니까 적당히 칼만 쓰자.”
풀이 확 죽는 치포였다.
“알았어. 캡틴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대신, 내 생각에 다음번에 전면전이 한번 있을 거야. 그때 마음대로 퍼부을 수 있는 판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치포의 표정이 확 풀렸다. 좋아라 하며 무기고로 뛰어 내려갔다.
한참전에 나갔던 재석과 태완이 방으로 들어왔다. 태완은 심지어 국정원 요원같은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근데 나를 보는 태완의 눈이 어쩐지 느끼하다. 재석의 눈동자와 참으로 닮았다.
“캡틴!
목숨을 바쳐 대업에 동참하겠습니다.“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하는 건 태완이었다. 재석은 자랑스럽게 칭찬에 목마른 강아지처럼 헥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캡틴! 재석이 모든 걸 다 이야기 해 줬습니다. 이 땅의 정의를 위해 한몸 불사르시는 영웅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부디 저를 받아주십시오.
비록 비루한 몸뚱이지만, 캡틴의 대의를 위해 아끼지 않고 태우겠습니다!“
허리를 숙인채로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난 재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재석아, 너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고른 것 같아. 어디 사이비 전도사 하지 그랬냐.”
아직도 90도로 접힌 허리를 펴지 않고 있는 태완이 한심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사이비 같은데 빠진 인간은 구제가 안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너 임마, 정신 차려!”
저런 머리로 국정원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그래, 국정원 공부 잘 해야 들어가는 덴데?
“야 민태완! 너 솔직히 말해 봐. 국정원 시험쳐서 들어간 거 아니지?”
태완의 눈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역시 캡틴이십니다! 저는 원래 필드요원으로 UDT 씰팀에서 차출됐습니다. 필드에서 사고쳐서 내근직으로 온 겁니다.”
그래, 역시 몸 굴리는 인간이었구나!
“너 실전은 해 봤냐?”
“아이고 참 내. 캡틴 제가 이래봬도 소말리아에도 갔었고, 아랍에미리트에서 교관도 했어요. 그리고 필드 요원일때는 중국, 북한 접경지역에서 일도 많이 했구요.”
잘 됐다. 지금 대낮이라 치포 데리고 가기 좀 그랬는데. 치포 얼굴이 워낙 티가 잘 나서 들킬까봐 조마조마 했었다.
“그래? 그럼 너 오늘 테스트 받을 준비 됐어? 테스트 하고 마음에 들면 우리하고 같이 일 해도 좋아!”
“좋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좋다고 따라가겠단다.
치포가 권총 두 정과 홀스터를 가져왔다.
“치포. 미안한데, 이번엔 민태완이랑 가야겠다. 이 녀석 테스트도 해 볼겸.
다음번에 화끈하게 벌일 때 너도 같이 가자. 오늘은 쉬어!“
치포도 총을 쏴대는 전장이 아니라 그리 흥미가 없었던지 순순히 민태완에게 총을 내 줬다.
우린 총을 받고 긴소매 방검복도 입었다.
민태완은 총을 받아들고는 불안한지 내게 물었다.
“근데, 총도 필요합니까?”
“모르지, 정 안되면 쏴야지. 살려면 별수 있겠냐? 100대 2로 싸우러 가는데.”
100대 2란 말에 태완이 눈이 똥그래졌다.
“그..그..그럼, 혹시 군용대검 있나요?”
치포가 늘 차고 다니는 군용대검을 뒷춤에서 빼 주었다.
“100대 2는 농담이죠, 캡틴?”
“응, 농담이야. 200대 2쯤 될 거 같애! 그러니까 예비탄창도 이렇게 많지.”
홀스터에 연결된 10개의 예비탄창을 보여주며 말하자 태완의 얼굴이 약간 하얘지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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