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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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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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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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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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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1-5

DUMMY

내가 맡게 될 역할은 형사3 역할이었다.

주인공인 살인자 역은 강윤성이, 그 상대역인 형사 역은 극단의 다른 선배가 맡고 있었다.

내가 하게 될 형사3 역은 강윤성을 잠시 취조하는 역할이었다.

원래 이 역할은 극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배가 맡았는데, 무대 울렁증이 있던 선배가 사고를 치고 극단을 그만두자 내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 선배가 어떤 사고를 쳤는데?”


나는 선배가 어떻게 그만두게 됐는지 궁금해서 희연에게 물었다.

희연은 얘기를 하기 전 몇 번 키득 거리더니 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살인자의 알리바이’에서 형사3 역을 맡은 선배의 대사는 다음과 같았다.


경찰서 취조실에 끌려온 ‘살인자’를 형사3이 다그친다.


- 형사3 : 어서 말해! 어서 말하라고!!!

- 살인자 : ······


‘살인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형사3은 피식 웃으며 살인자를 조롱한다.


- 형사3 : 말이 없는 걸 보니 겁을 먹은 모양이군.


희연의 설명을 들은 나는 여기서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짧은 장면에서 어떤 실수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이다.

희연은 또다시 키득 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 선배 울렁증 있는 거 알잖아. 첫 번째 대사까지는 잘했는데, 두 번째 대사에서 ‘겁을 먹은 모양이군’이라고 해야 되는데 그만 ‘떡을 먹은 모양이군’이라고 했다는 거야.”

“떡을 먹은 모양이군?”


살인자를 조롱하며 저 대사를 했을 선배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같이 있었던 배우들은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을 것 같았다.

희연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 뒤의 일을 말해줬다.


“강윤성이나 같이 있던 선배들이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데, 그 선배는 다른 선배가 대사를 안 하니까 도와준답시고 옆에 있던 형사2 역 선배를 보면서 ‘이 자식 떡을 먹은 모양이야.’라고 했대. 하하하!!! 그 다음이야 뻔하지. 다들 빵 터지고, 그걸로 개판이 된 거지.”

“하하!! 그래도 재미는 있는데. 관객들도 좋아했을 것 같은데.”

“관객이 좋아하면 뭐하냐? 연출이 노발대발, 단장한테 깨지고. 그 선배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결국 극단을 관두게 된 거야. 재미만 주고 가신 거지.”


희연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가끔 그 선배처럼 무대 울렁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무대에 섰어도 항상 처음 선 것처럼 떨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그래도 어느 순간이 되면 대개는 극복을 하는데, 이렇게 떠나는 선배를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를 위해서라도 단역이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괜히 선배 얘기를 해줬나? 머릿속에 그 대사가 박혀서 너도 ‘떡을 먹은 모양이군.’이라고 하면 어떡하냐?”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희연은 웃으며 도망치고 나는 녀석을 한 대 쥐어박기 위해 따라갔다.

잠깐의 해프닝이 끝나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단 몇 마디에 불과한 단역이지만 그 선배처럼 단역이 극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에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희연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을 하는데, 희연의 말처럼 선배의 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려는 웃음을 참느라 연습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첫 공연 날.

대기실에서 숨을 고르며 대사를 연습하고 있는데, 강윤성이 말을 걸었다.


“이연후씨. 연습은 많이 했어?”


약간 비아냥거리듯 툭 던지는 말투에 기분이 확 상했다.

그래도 선배자 주인공이니 나는 예를 갖추어 대답했다.


“네. 열심히 했습니다. 이따 잘 봐주세요.”

“내가 잘 봐줄 게 뭐 있어. 대사를 섞는 것도 아닌데.”


같은 말이라도 좋게 해 주면 덜 미울 텐데 놈은 재수 없게 말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뭐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놈이기도 했지만.


“하여간 잘 하겠습니다.”


강윤성은 곁눈질을 한 번 하더니 인사도 없이 휙 사라져버렸다.

그걸 보고 있던 형사2 역의 선배가 다가왔다.


“연후야! 너무 떨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첫 공연 때 잘하면 앞으로는 그냥 쭉 잘되는 거야. 알았지?”

“네. 선배님.”


나는 전생에서 연극 무대에 수백 번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금 이연후로는 처음이니 아무리 경험이 많았던 나도 떨리기는 했다.

나의 경직된 표정을 본 선배는 풀어 준답시고 농담을 던졌다.


“연후. 너 어디서 떡을 먹은 모양이야? 이따 무대에서 대사 잘 쳐!”

“아아!! 선배님!! 그러시면 자꾸 그 생각이 난단 말이에요!!”


선배는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대사를 읊조렸다.


“자. 이제 공연 시작합니다. 다들 준비하시고.”


연출의 말에 무대로 나갈 배우들이 재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라이트가 켜지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내 차례는 공연 중간 부분이었다.

1시간 반짜리 공연에 40분쯤 투입된다.

배우들이 대기실을 들락날락거리고, 대기실에 들어온 배우들이 의상을 바꿔 입고 분장을 고치면서 대사를 중얼거리자 정말 공연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점점 흐르고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자. 다음 살인자, 형사2, 형사3 준비. 곧 나가야 돼!”


연출의 지시에 따라 나는 마지막으로 의상과 분장을 점검하고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나갈 준비를 했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드디어 나는 무대로 뛰어나갔다.

경찰 취조실.

나는 무대 오른편에 앉아서 앞에 앉아 있는 강윤성을 바라봤다.

강윤성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애송이가 잘 하겠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무대의 조명이 들어오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나는 바로 대사를 하지 않고 앞에 앉아 있는 ‘살인자’ 강윤성을 잠깐 노려보았다.

잠깐이었지만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대사를 쳤다.


- 어서 말해! 말하란 말이야!


아랫배에 힘을 주고 최대한 성대를 사용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객석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내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대사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강윤성이 움찔할 정도였다.

다시 약간의 시간차를 둔 뒤 나는 강윤성을 바라보며 피식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강윤성에 대한 안 좋은 감정 때문인지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겁을 먹은 모양이군.


다행히도 머릿속에서 괴롭히던 그 ‘떡을 먹은 모양’이라고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형사2 선배가 대사를 받아 ‘살인자’를 달랬고, 이 장면은 큰 문제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잠시 후 형사2 선배와 나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오오!! 제법인데. 발성도 좋고. 너 성악 배웠냐?”

“아뇨. 발성을 좀 배우기는 했습니다.”

“뭐 발성을?”


선배의 얼굴에 웃음 반, 진지함 반 섞인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네. 극단 들어오기 전에 중저음으로 목소리를 바꿔보려고 연습을 좀 했죠.”

“효과는 봤어?”

“열심히 하다 보니까 약간 낮은 목소리로 변했고, 성량도 좋아졌고.”

“그렇구나. 나도 언제 가르쳐 주면 안 되겠냐?”


이제야 선배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선배도 목소리나 성량 때문에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무대에서 선배가 친 대사는 전달력이 부족해 보였다.


“네. 언제든지 말하세요.”

“그래. 고맙다.”


선배는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문제없이 첫 공연을 마치니 묵은 체증이 훅 내려가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남은 공연도 별 탈 없이 끝났고, 나는 관객에게 인사를 하러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오늘 공연은 잘 끝난 것 같아. 다들 열심히 해 줬고, 특히 연후가 오늘 처음 무대에 섰는데, 아주 잘했어!”


말을 끝낸 단장이 먼저 박수를 쳤고, 그러자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도 나를 보면서 박수를 쳐 줬다.

유독 한 사람만이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역시 강윤성이었다.


“단장님. 오늘 이연후 때문에 저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강윤성의 돌발 발언에 단장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왜? 무슨 문제 있었어?”

“아니. 갑자기 크게 소리를 쳐서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잖아요. 단역이면 적당하게 흐름에 따라서 가야지. 거기서 튈려고 소리를 치면 어쩌자는 건지.”


강윤성의 불평을 듣던 단장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강윤성에게 말했다.


“윤성아. 네가 좀 이해해라. 연후가 처음 무대에 올라서 그런 거잖아. 처음에는 떨려서 뭐가 뭔지 잘 모르잖니.”

“열심히 연습은 하는 것 같던데, 그런 것도 잘 모르면···”


단장은 강윤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연후! 너 앞으로 대사 칠 때 극의 흐름을 보면서 해. 잘하려고 하다가 극을 전부 망칠 수 있는 거야. 알았어?”


내가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건 단장이나 다른 배우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건 강윤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강윤성은 주연배우고 단장 입장에서는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난 단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단장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배우들을 좌우로 훑어보며 소리쳤다.


“다들 수고했고, 이만 쉬어라. 연후는 단장실로 좀 오고.”


무대에 있던 배우들이 흩어지고, 나는 단장의 뒤를 따라 단장실로 갔다.

단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단장은 쇼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윤성이 그 새끼 참. 말을 왜 그따위로 하는지···.”


단장은 한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나더러 자기 앞으로 앉으라 손짓했다.


“너 오늘 잘하더라. 연기 경험 없다는 거 맞아?”

“네. 집에서 몇 번 연습한 거 빼고는 따로 배운 건 없습니다.”

“그래? 배운 적 없는데도 그 정도면 너는 재능이 있는 놈이야.”


칭찬을 잘 하지 않는 단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내심 흐뭇했다.

단장은 테이블에 있던 대본을 훑어보며 물었다.


“너 아까 대사 칠 때 일부러 뜸을 들인 거냐?”

“네.”


역시 연극판에서 산전수전 겪은 단장다웠다.

내가 일부러 뜸을 들인 것까지 그는 파악하고 있었다.


“왜 그랬냐?”

“일종의 심리 싸움 같은 거죠. 실제 경찰들은 심리 게임을 한다고 들어서요.”

“하하!! 제법인데.”


단장은 만족한 듯 너털웃음을 몇 번 반복했다.

그러더니 품에서 봉투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단장님. 이게 뭡니까?”

“용돈이야. 희연이하고 술이나 한잔 하고 와.”

“뭘 이런 걸 다 주시고···.”

“첫 공연 잘해서 주는 거야.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훌륭한 배우가 되라.”


공연 잘 끝낸 것도 다행인데, 뜻밖의 선물까지 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단장은 나가라 손짓했고,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단장실을 나가려 했다.

그때, 게시판에 붙어 있는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삼인자’ 출연 배우 모집 공고]


난 그 공고를 보고 감전된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단장님! 저 이 영화 오디션 봐도 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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