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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밖에 없는 정신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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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짧은 단편] 천재 마법 소녀는 굴하지 않는다!


"나, 결심했어!"


그 방에는 오직 그 소녀만이 있었다. 무기물이라면 여러 가지 있었지만 생물이라고는 그녀밖에 없었다.


대체 뭘 결심했다는 건데?

"그야 당연하지! 여기서 탈출하겠다는 거야."


그녀는 요 삼일 동안 자주 그런 말을 꺼내왔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그녀는 이곳에서 나가려 하고 있었다.


굳이 그래야 돼? 어차피 밥도 주고 물도 주고 TV까지 있잖아.

"너는 이런 좁은 곳에서 살아도 좋은 거야? 이래봬도 난 자유주의자야. 참고로 좋아하는 사람은 애덤 스미스."

그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튼 소녀는 정말로 탈출을 결심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와, 정말 너무하네. 뭘 이리 꽉꽉 막아뒀어? 벽 이거 강철로 만든 거 맞지? 어휴."

새하얗고 가느라단 손으로 금속 벽을 쿵쿵 쳐대는 그녀. 물론 벽에는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비장의 히든 카드가 하나 있긴 한데. 나한테도 자존심이란 것도 있으니 그건 정말 마지막에 써야겠네."

소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열심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눈동자에 빛이 번쩍 들더니 힘차게 입을 열었다.


"조오아! 그러면 이제 10년 동안 좀도둑질 해온 내 경험을 살릴 때가 온 거 같네."

그 계산에 따르면 소녀는 4살 때부터 도둑이었다는 게 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4살이었던 소녀에 대한 데이터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야, 너 철사 없어? 내가 그거 하나만 있으면 진짜 금방인데. 없어? 아 몰라 내가 가져갈 거야."

멋대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철문의 문구멍에 철사를 무작정 쑤셔넣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저 멀리서 지켜본다.


"아씨, 이거 이상하네. 왜 이리 복잡한 거야. 이렇게 문구멍 복잡하게 만들었다가 미소녀가 밀실에 갇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포기하고 철사를 내던지는 소녀. 다시 손톱을 물어뜯으며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한 것 같다.


"흐음, 아무래도 미소녀 명탐정인 나를 물로 본 것 같은데? 벽을 강철로 만들면 뭐해? 저기 환풍기가 보이는데."

소녀의 말대로 상당히 큰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었다. 너무 약해보였다.


"음! 이제야 내가 오락실에서 펀칭머신만 8년 동안 수련한 보람을 맛볼 때가 온 거 같네!"

7살 때부터 펀칭머신을 했다고 주장한 소녀는 주먹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가녀리고 작은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 주먹만큼은 결코 약해보이지 않았다.


"으랴아아아압!"

그리고 아름다운 점프. 티셔츠가 잠깐 떠올라 배꼽이 살짝 드러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뭐 이리 높아. 누굴 최홍만으로 아는 거야?"

환풍기는 천장에 달려 있었다. 그녀의 작은 키로는 닿을 리가 없었다. 소녀는 드디어 자포자기한 건지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야 너, 이 귀여운 미소녀 도와줄 생각 없어?"

아쉽게도 그 질문에 대응할만한 대답은 준비되지 않아 있었다.


"혹시라도 나가게 되면 내가 네 여자 친구 되줄 테니까. 너 옛날부터 나 좋아했었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언제나 냉철한 것으로 유명한 내가 사랑 같은 걸 할 리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이성적은 무슨, 언제나 성적인 생각만 하고 있으면서."

소녀는 이번에는 다용도 나이프를 손에 잡더니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찢기 시작했다. 긴 천 조각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소녀의 상반신은 속옷 차림이 되었다.


"뭐, 됐어. 나는 천재소녀라서 사실 니 도움 같은 건 필요로 안 하거든."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천재였으니까.


"암튼 진짜 간단히 꺼내줄 생각은 없는 거 같네. 자존심이고 뭐고 이제는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주먹을 불끈 쥐는 소녀. 그것은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5년 동안 제작해왔던 히든 카드, 드디어 꺼낼 때가 온 것 같네."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마치 마법사라도 된 것처럼 제자리에서 빙빙 돌더니 소리쳤다.


"그러면 이제부터 보여줄게, 내 히든카드!"

활기찬 목소리. 소녀는 아까 티셔츠를 찢어 얻은 천 조각을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꽉 깨문다.


"으읍!"

그리고는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소녀는 정말로 일순간에 밀실에서 사라졌다.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그녀는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소녀는 정말로 천재나 마법사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굉장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밀실의 문은 어느새 열려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선인가 멋대로 뉴스가 들려온다.


[ 어제 새벽, 압구정동의 어느 한 건물에서 여자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은 긴 감금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피해자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범인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밀실에 피해자와 함께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있었다는 것이며, 이 점에 대해서 과학기술부는......]


나는 안테나를 껐다. 그러자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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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청 짧은 단편 | 추석에 찾아온 청춘. 13-09-15
» 엄청 짧은 단편 | 천재 마법 소녀는 굴하지 않는다! 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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