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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가니에(GO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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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3
최근연재일 :
2022.06.09 23:59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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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추천수 :
60
글자수 :
59,330

작성
22.06.0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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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03 나지르의 마지막 빛(4)

DUMMY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대체 어디서부터 소리가 전해져 오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이것을 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소리라고 한다면 대기의 진동이 귀로 전달되어 청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 하지만 말을 걸어오는 이 목소리는 귀를 통하지 않고 바로 머릿속을 울리고 있다.


[정말이지 오랜 세월이 흘렀군요. 이렇게나 오래 기다리게 될 줄이야..]

“기다렸다고요..?”

[그렇습니다.]


마치 물어봐 달라는 것 같은 느낌이군.


“케이디 님. 당신은 여기서 무얼 기다리신 건가요?”

[그동안 나의 사념이 잠들어 있는 이 주변을 수많은 인간들이 다녀갔지만, 정확한 자리에서 그 이름을 불러 나를 깨워낸 인간은 그대가 처음입니다. 아니.. 나무의 상태를 보니.. 그대는 운이 조금 좋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아리송한 말들이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다.


어쨌든 이 목소리의 주인은 아마도 수만 년 전 죽은 나지르의 창시자인 케이디. 그런 그가 처음이라 했으니.. 수만 년이 지나 내가 그의 목소리를 깨운 것이리라.


“에.. 일단.. 뭐라고 하지? 어.. 저는 서휘라고 합니다.”

[그래요 모험가여. 하지만 그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 쩝.. 그럼 중요한 게 뭔데?


[그대가 풍겨대는 탐욕의 냄새가 내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군요. 그대의 목적 역시 나지르의 보물들이겠지요.]


뭐? 무슨 냄새? 탐욕?


“탐욕의 냄새라.. 하하. 혹시 절박함의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습니까?”

[후훗. 모른척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나지르의 보물들을 찾아 헤매며 탐욕으로 눈이 뒤집혀있던 모험가들을 너무도 많이 봐왔으니까요. 당신 역시 보물을 얻으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불신이 많은 녀석이로군? 그래. 나도 아이템을 얻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니까 딱히 할 말은 없다만. 하하.. 탐욕이라..


그건 그렇고, 책에서 접했던 케이디의 성품과는 상당히 다르다. 온화하고 다정한, 그리고 웃음을 잃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했는데? 내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이제야 말할 사람을 만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전설의 힐러 케이디. 그는 검신을 도와 마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첫 번째 세대의 인물. 마신이 처음 이 세계에 강림한 그때, 그리고 후일에 쓰여진 일화들은 거의 신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미화되고 과장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흐음..”


이러나저러나 게임 속 상황이고, 유저가 아니라면 어차피 NPC. 그리고 NPC는 곧 퀘스트의 열쇠.


이 녀석도 내 부름에 응답했으니, 퀘스트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보통의 NPC들이라면 적당한 부탁을 하고서 그 보상으로 유저에게 아이템을 주겠지만, 과거의 환영이 나타났으니.. 어떤 퀘스트가 발생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바라 마지않던 보물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은데..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많은가 보군요. 모험가여.]


흥. 예리하기는.


“생각이 많다기보다는, 할 말이 없어 잠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힌트라도 내놓으라고.


[애처롭군요. 보물을 원한다고 떳떳하게 얘기하는 것이 부끄럽나요? 갈망하는 것은 죄악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강해지기를 원하고, 그 강함으로 세상에 위명을 떨치기를 원하죠. 그대도 그런 게 아닙니까?]


아주 답을 정해두셨군. 내게서 그 말이 꼭 듣고 싶은가?


“예예. 그런 것 같네요.”

[대답이 애매하군요.]

“아이고 원합니다요! 보물을요!”

[그대의 소망 잘 알아들었습니다.]


망할 슈퍼컴퓨터.


[나의 작은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대가 원하는 나지르의 보물 두 가지를 약속하죠. 그대가 원하는 것은 나지르의 네 가지 보물 중 어느 것입니까?]


됐다! 그런데.. 선택? 역시 네 가지 모두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군.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이거지!


“나지르의 마지막 빛입니다.”

[... 그것 말고, 다른 것 한 가지를 더 말해보세요 모험가여.]


응? 잠깐 정적이 흘렀던 것 같은데..? 뭐지? 설마 나지르의 마지막 빛은 줄 수 없다거나.. 그런 개수작은 아니겠지?


[어서 다른 것 한 가지를..]


흐음.. 나머지 셋 중 가장 활용도가 큰 것이라면 당연히 공간 확장 아이템인 흑의 주머니지.


“흑의 주머니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모험가여. 그대가 나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두 가지 보물 모두를 그대에게 하사하도록 하죠.]


후우.. 두 가지 다 준다니 다행이군.


“그럼 이제 부탁을 얘기하시죠.”

[내 부탁은 간단합니다. 카바오 산 아래. 하얀 호수의 수호목을 찾아, 그 수호목에 봉인된 마나 스톤을 내게 가져다주세요.]


잠깐만.. 마나스톤? 흐음.. 일단 수락 먼저 하고.


“알겠습니다.”


쿠웅.


퀘스트 발생 효과음이 들려왔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 : 하얀 호수의 수호목에 봉인된 마나 스톤을 탈취해, 목소리의 주인에게 전달한다.

보상 : 나지르의 마지막 빛, 흑의 주머니.]


마나스톤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뭔지 감이 잡히는 것 같군. 지금 나와 대화한 케이디의 사념도 마나스톤 같은 에너지 공급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또 다른 마나스톤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이유는 뭐지..?


뭐.. 이유는 차차 알아가도록 하고.. 일단 저건 어떻게 해야 할까..?


뒤를 돌아 편안한 표정으로 흙바닥에 잠들어있는 그레이스를 보자, 미간 사이가 절로 구겨졌다.


*


실컷 자고 일어난 개운한 느낌에 눈을 뜬 그레이스는 상상도 못할 고통에 신음이 절로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흐으.. 으으..”


목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찌릿거리는 고통.


불현듯 어제 그 음흉한 남자에게 뒤를 잡히고 일격을 당하던 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젠장!”


쾅!


그레이스는 바닥으로 주먹을 내려치고 나서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바닥을 주먹으로 쳐봐야, 자기 주먹만 아프다는 것. 그리고 어찌 됐든 자신이 멀쩡하게 다시 눈을 떴다는 것.


비록 고통은 느껴졌지만, 얻어맞은 목 부위 외에 아픈 곳은 없었다. 그리고 흙바닥에서 잠든 것치고는 몸의 체온이 잘 유지된 것 같았다. 바로 손에 잡히는 두꺼운 담요 덕분에.


“이건..”


그레이스의 담요 이외에도 서휘 몫의 담요까지 그녀를 둘둘 감싸고 있었다.


‘왜 나를 살려뒀지..?’


그레이스는 몸을 털고 일어나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지만, 서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체 목적이 뭐야 그 음흉한 놈!”


나지르의 보물을 노리는 자라면, 자신을 살려두는 선택은 어떤 면으로 보나 득이 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레이스는 황망하게 숲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그루터기 옆에 서서, 동이 터오는 동쪽의 붉은 새벽 어스름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결심을 굳힌 그녀는 주변을 정리한 뒤 남쪽으로, 그가 향했으리라 추측되는 카바오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꼬박 한나절을 걸었다.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걷기 시작했고, 다시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카바오 산자락 끝에 걸렸다.


지도는 아주 정확했다. 근위기사단장 테오도르가 건넨 이 지도는 모든 부분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동하는 데에 알아 두면 좋은 지형정보들이 꼼꼼히 표기되어 있었다.


그동안 아주 많은 이들이 나지르의 보물을 찾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는 얘기겠지.


목적지인 하얀 호수가 눈에 들어오기 전에, 멀리서부터 나무 사이로 보이던 카바오 산이 점차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발목과 종아리가 뻐근하다. 힐러가 있다면 이런 것도 치료가 될 테지?


힐러인 그레이스와 틀어지게 된 일은 아쉽게 됐다. 무엇보다도 나지르라는 단체와 척을 지게 생겼으니, 다시 시호 녀석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기도 애매해졌다. 역시 그 점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지르의 마지막 빛은 내가 가져야만 한다.


이러나저러나 그 보물을 취함과 동시에 어차피 틀어질 사이였다는 얘기.


비록 그 시기는 늦추면 늦출수록 좋았겠지만, 그 상황에서 그레이스를 속이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떠오르는 잡념들을 정리하며, 몬스터들의 영역을 비껴 걷는 사이. 어느새 하얀 호수의 근처까지 다다랐는지 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킁킁.


고인 물은 대개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가 섞여있게 마련인데, 그런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청량하기까지 한 냄새였다.


“신기하네. 호수가 이런 향기를 다 풍기다니?”


풀 내음과 흙 내음까지 뒤섞여 풍겨오는 편안한 향기는 마음까지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향기가 점점 더 진해져, 더 이상 진해지지 않았을 때. 바로 눈앞에 하얀 호수가 나타났다.


“와..”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은 감탄을 도저히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높은 나무들을 뚫고, 넓은 호수 곳곳으로 떨어지는 하얀 달빛과 별빛들. 그리고 희미한 밤의 빛을 반사하며 짙은 초록으로 일렁이는 호수 주변의 커다란 나무들. 무엇보다 호수의 색이 맑은 하얀색이라는 점이 아주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호숫가 주변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 몬스터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멧과 베오르들.. 그리고 책으로만 확인했던 다른 흉폭한 몬스터들. 심지어 방금 풀숲으로 모습을 숨긴 것은 티게스였던 것 같았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그것들의 눈치를 잠시 살폈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어떤 적대감도 드러내지 않고 물만 마시고 머리를 돌려 사라졌다.


책에서 표현된 것처럼, 이 하얀 호수 근처는 마치 평화협정이 맺어진 지역 같았다.


“괜찮은 거 맞겠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별 반응 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몬스터들. 저 멧이라는 놈들은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높은 공격성이 특징인 녀석들이라고 했는데..


눈으로 보고도 잘 믿기지가 않는다. 이 호수에는 정말 어떤 신비로운 힘이라도 있는 것인가?


몬스터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이 하얀 호수 어딘가에 있는 수호목. 어느 책에서도 호수의 수호목이라는 얘기는 읽지 못했지만, 나는 케이디가 수호목이라 칭한 나무가 무슨 나무일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바로 케이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그루터기처럼 아주 오래된 나무.


그 나무는 호숫가를 따라 걸은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그 웅장하고 커다란 머리를 빼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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