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가니에(GONYE)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3
최근연재일 :
2022.06.09 23:59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452
추천수 :
60
글자수 :
59,330

작성
22.05.18 06:11
조회
23
추천
4
글자
11쪽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3)

DUMMY

다시 방문하게 된 영주의 집무실에 영주는 없었다.


“아.. 안녕하셨습니까 근위대장님?”


대신 영주의 의자에는 근위대장이 앉아,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마을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정말 사실이었군. 계속 여관에만 틀어박혀 있던 것인가?”

“하하.. 그건 아니옵고, 대부분 시립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서관??”

“네.”


내가 책 좀 읽는다고 하면 친구 놈들이나 NPC들이나 이런 반응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린 등급을 받았다더군? 첫 등록 날 그린 등급을 받는 모험가가 세상에 흔한 편은 아니라네.”


아무래도 이 도시에 내 프라이버시는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지역의 관리 계급이니, 모험가 길드에서 정보를 받을 수 있다든가?


“아.. 하하.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자네는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나 보군.”

“헤헤.. 뭐..”


근위대장 테오도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거에 브라운 등급의 모험가였다는데, 시험날 자칫 잘못해서 브라운 등급을 받았더라면 상당히 피곤해졌을 게 분명하다.


“자네는 이 도시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뭐.. 그게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대체 이 가니에라는 세상에서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세상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오랫동안 산속 깊은 곳에서 살았다 보니,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 책 속에 세상이 있던가?”

“그걸 이제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근위대장 테오도르는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영주님의 제안을 다시 받아들이고 싶다 했다고?”

“네 맞습니다.”

“조사관이라는 직책은 기사의 직위를 받게 되는, 가볍지 않은 자리라네.”


어쩌라는 거야? 맡아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확 그냥 들이받아 버릴까 보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습관성 박치기 중독자처럼 이마를 힘껏 움직여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정중하게..


“예.. 당연히 그렇지요 근위대장님. 저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드는 것은 아닙니다.”

“흐음..”


근위대장은 잠시 고민을 하는 얼굴을 하더니, 내 뒤로 서있던 자신의 부하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근위대장은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와 함께 다시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니. 퀘스트 다시 받을 수 있는 거 다 알고 왔다고. 까다로운척하기는.


속으로 혀를 수백 번은 더 차고 있던 그때, 복도를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이 가볍다. 통통했던 영주는 아니고, 아마도 가벼운 여자의 발걸음 소리.


하지만 경박하게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그 사람이 등장하길 기다렸다. 여자의 발걸음 소리는 집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멈칫하고 끊겼다.


나를 보고 놀랐나?


“아.. 부르셨습니까?”

“예. 앉으세요 그레이스.”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던 노랑머리 싸가지. 이 여자는 왜 부른 거지?


“이 자는 왜 또 여기에 있는 거죠?”


역시나 어린 시절부터 싸가지가 결핍된 채 성장했다는 설정의 NPC인 것 같다.


“모험가 서휘 씨가 지난번에 제안했던 일을 다시 맡아 주기로 했네.”

“..?”


그레이스라는 여자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궁금함과 비호감 사이의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네 그렇게 됐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일을 맡기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다시 맡을 수 있을까 하고요.”


언제든지 퀘스트를 다시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 나 이외엔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맡겠다는 이유가 뭐죠? 그때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않았었나요? 바쁘다는 사람 치고는 굉장히 나태로운 시간을 보내셨던데.”


역시나 이 도시에 내 프라이버시는 없다. 이럴 때 가장 먹히는 얘기는 언제나 이것이다.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헤헤.”

“...”


정적이 잠시 흐르자, 다시 테오도르가 나섰다.


“그렇다는군. 그동안 나름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정보를 많이 조사한 모양이야. 산속에서 원시인처럼 지내던 날들을 만회하려던 건지.. 아무튼 그레이스. 자네도 출발할 준비를 하게.”

“...?!”


뭐야? 나 혼자 가는 게 아니었어? 아 귀찮게 진짜.


“아하! 이 분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그렇네. 그레이스는 나지르 힐러 연맹에서 로메오로 파견된 힐러일세. 사실상 이번 임무의 진짜 의뢰인이기도 한 셈이지.”

“아..”


예상대로 나지르 힐러 연맹과 관련된 일이었군. 정말 내가 찾는 아이템과 관련이 있는 퀘스트일 확률이 높겠어.


나지르 힐러 연맹. 마나시대 원년에서부터 이어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조직 중 하나. 이 싸가지 없는 여자가 그 나지르의 일원이라니 놀랍군.


여자는 다시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돈에 따라 움직이는 나의 훌륭한 인성에 감탄하고 있는 중이지 않을까 싶다.


“영주님께서 내일 돌아오시니, 그때 작위 수여식을 마친 뒤 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게. 내일 오전 중에 여관으로 사람을 보내겠네.”

“예.”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로메오 시의 영주 게헨나의 제안을 수락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보상 : 조사관 직책과 4골드의 월급.]


*


“휘 형!”


내가 짐을 싸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시호 녀석이 다급한 목소리로 내 방문을 두들겼다.


“어 들어와.”


녀석은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로 뭔가 많이 묻고 싶은 얼굴로 서있었다.


“뭐해? 거기 계속 서있을 거야?”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음.. 그건 비밀이지. 아주 비밀스러운 비밀의 극비 임무거든.”

“참나. 그게 뭐예요.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응. 조사 임무니까. 다시 돌아와서 보고까지 해야 하는 퀘.. 아니 임무야.”

“아. 다시 오는 거죠 그럼?”

“응.”


내 대답에 녀석의 얼굴이 잠깐 편안해지더니 다시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입술을 오물거렸다.


“형.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거는..”

“아냐아냐. 그냥 간단한 조사 임무야.”


짧지 않은 시간, 마치 늦둥이 동생처럼 나를 잘 따르던 아이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휴.. 그럼 다행이에요. 금방 돌아오는 거죠?”

“시호야.”

“네?”

“형이 생각보다 돌아오는 게 오래 걸리면, 그건 형이 더 안전하고 먼 길을 택해서 오래 걸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 알겠어요 형. 오래 걸리면, 형이 더 안전한 길로 오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지! 똑똑한 녀석.”

“헤헤.”


시호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아이가 NPC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라면, 과연 NPC를 한낱 프로그램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일까?


“형. 오늘 출발 전 날 저녁이라고, 엄마가 마을 사람을 다 불러서 맛있는 거 대접한다고 했어요.”

“엑?”


아이고.. 이 마을은 정말 숨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사실 무슨 임무인지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알겠어. 바로 내려갈게.”


시호 녀석이 콩콩 거리는 발걸음으로 사라지자, 나는 정리한 짐을 문 옆에 내려놓고, 설정창을 열었다.


“플레이 내용 비공개 전환.”

[서휘 님의 플레이에 대한 접근 권한을 비공개로 변경하시겠습니까?]

“응.”

[변경되었습니다.]


이건 미안하지만 공개하기 싫은 정보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그대로 서버의 정상화가 이루어진다면 상관없겠지만, 모든 것이 리셋된다면? 내가 이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비릿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에서 썩은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공개할 수 없다.


1층 식당에는 정말 많은 마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가운데 자리를 비워져 있었다.


“아이.. 부담스럽게 진짜.”


나는 못 이기는 척 그 자리에 가서 엉덩이를 붙였다. 그때, 시호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여자아이가 내 옷자락을 당겼다.


“오 유진이도 왔구나.”


이미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제 아비의 손을 잡고 내게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온 아이였다. 나는 아이의 정수리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언제나 깍듯하게 대하는 유진의 아빠, 데크가 병사들이 먹는 보존식이라며 단단한 빵 같은 것을 건넸다.


“몸조심하게. 그린 등급 모험가니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이야.”

“하하.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얼마나 쫄보인데요? 안전한 길로만 다닐 거라고요. 이거 잘 먹을게요.”


나는 퀘스트 보상으로 선지급받은 4골드 중 하나를 꺼내, 여관 주인인 시호의 엄마에게 건넸다. 그녀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지만, 받지 않으면 이 여관에 다시 오기 힘들다는 내 얘기에, 나를 째려보더니 1골드를 전대에 쑤셔 넣었다.


왜 NPC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즐거운 기분으로 술잔들을 비우고 취해간다. 이것도 다 캡슐의 신경 치환으로, 느낌만 주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즐겁다. 아저씨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돈이 없으면 시작도 못하고! 사랑이 없으면 끝이 보이는 그것이 바로!


친구 녀석들이 말릴 때 한번 더 생각했어야 했지!


아버지의 측은한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렸어야 했지!


그것이 바로!”


음치들. 하지만 아저씨들이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면 그것도 좀 그래. 아 취한다.


“저 노래는 뭐야? 아저씨들이 죄다 군가처럼 부르네?”


내가 묻자, 시호가 꼬치에서 고기를 빼서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옛날에 이 마을에 왔던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노래라고 했는데.. 제가 노래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나중에 다 알게 된다고 안 알려줘요.”

“그래?”


떠나기 전날 밤의 노래라..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 일단 기억해둘까?


다음날 오전. 근위대장 테오도르가 이번에는 제시간에 사람을 보내왔다. 나는 미리 준비한 짐을 챙겨 그들을 따라나섰다.


영주의 성 한가운데에 있는 소박한 정원에서, 나는 영주에게 기사 작위와 검을 하사받았다. 연습용으로 샀던 싸구려 검보다는 당연히 좋았지만, 명검이라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수준의 검이었다.


그렇게 형식적인 절차는 금방 끝이 나고, 출발하려는 나의 옆으로 로브를 뒤집어쓴 그레이스가 간단한 짐을 들고 섰다.


그녀는 기다란 장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나지르의 제자들은 힐러임에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무술을 사용하는 자가 많다고 하더니, 그녀 역시 검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길은 당신이 정한 대로 가죠.”


당연하지. 건방진 여자야. 내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기나 해라.


“네. 제가 열심히 조사한 편한 길로 모시겠습니다.”

“... 편한 길은 없습니다.”


시작부터 초 치는 재주가 아주 대단해. 그런데 어쩌라고?


“그래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가시죠.”


NPC와의 동행이라니 다른 게임에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부담도 되지 않고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가니에(GONY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시 업로드가 시작됩니다. 22.06.10 23 0 -
11 Ep.03 나지르의 마지막 빛(4) 22.06.09 23 1 11쪽
10 Ep.03 나지르의 마지막 빛(3) 22.05.24 29 2 10쪽
9 Ep.03 나지르의 마지막 빛(2) 22.05.20 30 2 9쪽
8 Ep.03 나지르의 마지막 빛(1) 22.05.19 31 4 10쪽
»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3) 22.05.18 24 4 11쪽
6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2) 22.05.17 46 5 13쪽
5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1) 22.05.15 42 3 10쪽
4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4) +1 22.05.14 40 7 14쪽
3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3) 22.05.13 50 7 14쪽
2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2) 22.05.12 49 10 14쪽
1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1) 22.05.11 88 1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