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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에(GO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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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3
최근연재일 :
2022.06.09 23:59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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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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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330

작성
22.05.1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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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2)

DUMMY

“직책을 내릴 터이니, 성에서 나를 위해 일해 볼 생각은 없느냐?”


[퀘스트 : 로메오 시의 영주 게헨나의 제안을 수락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보상 : 조사관 직책과 4골드의 월급.]


흐음.. 이런 경로로 이끈다 이거지? 이제 이 게임이 유저들을 어떤 길로 이끄는지 그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 MMO 온라인 게임의 유저들은 직책이 아닌 직업을 갖는다. 단순하게 전사, 마법사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저들이 항상 게임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할 때 게임을 플레이하고, 로그아웃을 해서 현실의 시간 역시 살아가야 하는 유저들.


유저들은 필연적으로 게임 속 세상에 늘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게 되는 ‘직책’은 맡을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런 유저 중 한 명인 나에게 직책을 제안하는 눈앞의 NPC.


조금씩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이 게임은 나를 유저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로그아웃은 이들에게는 없는 개념인 것이다. 아마도 다른 서른 명의 유저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겠지.


머리가 아프다. 이 직책을 맡냐, 맡지 않느냐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 나는 대체 어떤 일에 휘말린 것인가?


“후우..”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는 나를 보며 영주는 살짝 당황한 얼굴을 했다.


“흐흠.. 어떤 직인지도, 조건도 듣지 않고 이리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영주님!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이런 출신도 실력도 제대로 모르는 자를 기용하다니요? 제가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근위대장님이 뭘 본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라고 떠들든, 맘대로 해라. 나는 네놈들이 짜놓은 스토리에 발 담그고 싶은 생각 없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거절한 다음, 앞으로 최대한 NPC들과의 접촉을 삼가야겠다고 생각이 정리된다. 어쨌든 해피 게이트에서 로그아웃할 방법을 찾아내는 동안만 버티면 되는 것이니까. 괜히 이런 이벤트에 휘말려, 위험을 자초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노랑머리 여자의 말에 영주는 생각이 복잡해졌는지, 고민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근위대장 쪽을 바라봤다.


‘저 영주란 자는 근위대장에게 의존을 많이 하고 있군.’


언뜻 봐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근위대장에게 암묵적 동의를 구하는 모습. 저 노랑머리 여자의 답답해 보이는 표정이 슬슬 이해가 간다.


그때, 가만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던 근위대장이 입을 열었다.


“무슨 직책인지 얘기도 듣지 않을 생각인가?”


내게 주어질 직책이 조사관이라는 것은 퀘스트 창 정보로 알고 있고.. 제안을 수락하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준다니,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을 것 같지만..


항상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도 바로 거절하는 것보다는 들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니까.


“들어 보겠습니다.”


내 대답에 노랑머리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횃불이 노랗게 일렁이는 창밖을 바라봤다. NPC 일뿐이다.. 괜히 열받지 말자.


“영주께서는 특별한 임무를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네.”

“어떤 임무죠?”


어떤 임무기는. 이자들이 직접 하지 않는 일이니 위험한 임무일 것이 뻔하다.


“그냥 간단한 임무일세. 우리 도시 남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 근처에서, 민담과 관련한 자료들을 조사하는 일 일세.”


응 안 해.


“간단한 임무라니 다행이네요. 저는 조금 바빠서 힘들 것 같은데, 저 말고 더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고개를 짧게 끄덕인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함과 동시에 분위기를 망치지 않면서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 주로 이런 표정을 짓는다.


[퀘스트를 거부했습니다. 이 퀘스트는 언제든지 다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흐음.. 거부했는데도 이런 조건이라면 정말 나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몸을 사릴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다짜고짜 불러내서 원치 않는 일을 들이미는 경우 없는 상황이 나로서는 매우 빡이 치는 상황임은 맞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상대는 지역의 관리. 현실 세계로 치면, 옛 전쟁의 시대의 귀족들과도 같은 위치. 거기다가 NPC. 내 성질 그대로 부려봐야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최대한 송구스러운 표정과 함께 양손으로 무릎을 짚는다. 하지만 상대방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기 전까지 엉덩이는 떼지 않는다. NPC들에게 이런 비 언어적인 표현이 통할까 싶지만, 오히려 프로그래밍에 의해 행동체계를 학습한 상태인 이들에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영주가 나의 얘기에 다시 근위대장 쪽을 바라봤다. 근위대장이 미세하게 어깨를 으쓱하니, 영주는 나를 향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귀한 제안 감사했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영주님.”


몸에 밴 처세는 어린 시절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익히게 된 나의 무기다. 딱딱하게 구는 태도는 다수의 반감을 사고, 변태들의 호감을 산다.


상대방을 물 먹이는 행동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확실한 타이밍에 해야 한다. 내가 LOW 결승전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브 차림으로 날 데리러 왔던 저 노랑머리 여자는 괜히 나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 놓게 된 것이다. NPC니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외모가 훌륭한 것도 감흥 없다. NPC는 어떤 얼굴이든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힐끔.


예쁘긴 예쁘네.


연결된 내용으로 이어지려던 퀘스트를 끊어내서 그런지, 여관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사건과 사고를 최대한 멀리하면서, 어디 도서관이라도 찾아 이 세계의 역사라도 공부하고 있어야겠다.


다른 유저들도 더는 무리하지 않고, 꼭 다 같이 무탈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빌어먹을 게임사에 소송을 걸어야 하니까.


*


“네!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그만큼 연말 분위기가 성큼 다가온 요즘. 정확히 78일째 되는 날입니다. 게이머들이 가니에 온라인이라는 게임에 갇히게 된 지가 말이죠.”


시사방송의 엠씨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방송의 서두를 열었지만, 그가 촬영하고 있는 세트장의 콘셉트는 밝고 쾌활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도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죠?”


엠씨는 패널로 나온 전문가에게 질문을 했다.


“맞습니다. 이쯤 되니, 이제 전 세계 제국민들 모두가 해피 게이트에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네. 안타깝군요..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첫날 이후로 강제 종료 당한 게이머가 나오지 않아서 말이에요.”

“그렇죠. 서른한 명의 게이머 모두가 게임 속에서 잘 생존하고 있습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던 한 명은 찾았습니까?”


엠씨의 질문에 패널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중 무작위 매개변수 VPN을 사용하는 유저라, 사실상 해피 게이트도 그 유저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 유저는 여전히 게임 플레이 내용도 비공개 상태인 것이죠?”

“네 맞습니다. 가니에 온라인은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없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그 유저의 실제 모습을 확인한다면, 제보 등을 통해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지금은 그저 캐릭터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예.. 그럼 조금 밝은 이야기를 해 볼까요?”

“네! 저도 이 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엠씨와 패널. 두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전 제국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제이 씨. 제이 씨의 오늘 소식은 어떻습니까?”

“아하하! 이미 칸 씨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하.. 이거 들켜버렸군요. 제이 씨는 정말 바람의 제국 시절부터 독보적인 랭킹 1위라는 명성답게, 차근차근 그리고 안전하게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그 제이 씨가 드디어 모험가 등급, ‘블랙’을 경신했습니다!”

“아하하. 칸 씨가 이렇게 흥분한 모습 참 오랜만이네요. 모험가 등급에 대해 잘 모르시는 시청자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블랙 등급은 옐로우, 그린, 브라운, 블랙, 화이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래디언스. 이렇게 여섯 등위로 나누어진 모험가 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등급이죠! 이 가니에 세계관에서 블랙 등급 이상을 달성한 모험가들이 현재 백 명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으니까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아.. 저는 정말 바람의 제국 시절부터 팬이었는데, 너무 아름다운 캐릭터와 뛰어난 실력 때문에, 사실은 남자인데 여캐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헛소문도 많이 있었죠.”

“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실제 모습임이 드러났고요.”


두 사람은 태연한 척했지만, 귀 끝이 살짝 달아오른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아.. 저희 표정이 너무 추하네요. 그럼 다른 유저들 얘기를 잠깐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볼까요?”

“아하하! 네 좋습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소극적으로 잘 움직이지 않으며 플레이하고 있는데요. 그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게이머가, 전 제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서휘 씨 아닙니까?”

“아.. 네 그렇죠. 서휘 씨는 여관 그리고 로메오 시의 시립도서관. 딱 두 군데만 왔다 갔다 하고 있죠. 마치 수험생처럼요.”

“하하. 정말 수험생이 따로 없네요. 게임 첫날에 보여줬던 정말 엄청난 신위는 이제 추억이 되어 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서휘 씨의 선택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이고요 또.”

“그렇죠. 하지만 해피 게이트가 마땅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이 씨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제국민들의 여론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게 또.. 최강의 프로게이머라 불렸던 서휘 씨다 보니, 실망의 목소리를 넘어 비난까지 서슴지 않는 여론이 상당하고요.”

.

.

.


*


“한심한 놈.”

“남자가 돼 가지고.”

“역사상 최고의 프로게이머? 흥. 웃기지도 않아 아주.”

“혼자 고생하시는 제이 님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하아.. 미친놈들. 바깥소식 좀 들으려고 아지트와 연결했더니, 이 웬수인지 친구인지 모르겠는 놈들은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재밌냐 도서관? 학교 다닐 때는 책 근처에는 가지도 않던 놈이 무슨 책이야 책은?”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이유는 책을 볼 필요가 없는 길을 걸었기 때문이었지, 책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이 모지리들이 제국 대스타의 삶을 알겠냐마는.


“야. 너 그거 아냐? 이제 서른한 명, 싹 다 그린 등급 이상이야. 처음에 유일하게 제이 님하고 네놈하고만 그린 등급을 받았는데 말이지. 그리고 네놈이 그 도서관에서 띵가띵가 놀고 있는 동안, 제이 님은 홀로 고군분투하시어 블랙 등급까지 경신하셨고.”


네놈들 모지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난 첫 모험가 등급심사에서 잘못했으면 브라운 등급까지 받을 뻔했다. 결국 중간부터 대충 힘 조절을 했기에, 그린 등급을 받은 거지. 높은 등급은 모험가 길드에서 높은 난이도의 퀘스트를 받을 때 말고는 전혀 쓸 데가 없다.


아! 하나 있긴 하다. 명예. 하지만 명예가 식물인간이 될 위협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니까.


친구라는 놈들이 게임 속에 갇힌 불쌍한 친구를 사지에 몰아넣지 못해서 안달이 났으니.. 인생을 잘못 산 것인가 회한이 밀려온다.


“제이 님한테는 너 같은 딜러가 필요하다고 인마!”


저 말은 맞는 말이긴 하다. 제이는 뛰어난 전천후 플레이어이긴 하지만, 본래 뛰어난 탱커이니까. 아마 LOW 프로로 뛰었어도, 충분히 탑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야 놔둬. 저 자식 저 큰 도서관에 있는 책들 다 읽을 때까지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도망이나 쳐라 인마! 제이 님이 게임 클리어하고 나면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려고 저러는지 원..”


내가 알아서 잘 하겠지 이 모지리들아. 무작정 게임을 진행하면서 방법을 찾는 것도 길이겠지만, 책 속에도 길이 있다는 말씀이야.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이 가니에라는 세계의 역사에 대해 꼼꼼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유저로서 안전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거부했던 퀘스트와 관련된 지역. 영주가 얘기했던 로메오 시 남동쪽의 카바오 산. 그 산에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있었다.


게다가 책 속의 설명에 의하면, 최대한 안전한 경로로도 이동 가능하고, 그렇게 했을 때 위험부담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지역이다.


뭐 그럼.. 돈도 슬슬 떨어져 가니까 겸사겸사 퀘스트를 받아서 떠나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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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2) 22.05.17 46 5 13쪽
5 Ep.02 게임을 대하는 서른한가지의 방법들(1) 22.05.15 42 3 10쪽
4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4) +1 22.05.14 40 7 14쪽
3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3) 22.05.13 50 7 14쪽
2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2) 22.05.12 49 10 14쪽
1 Ep.01 새와 알, 그리고 새로운 세계(1) 22.05.11 88 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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