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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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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0 14:03
최근연재일 :
2022.09.26 21:1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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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8
추천수 :
71
글자수 :
179,806

작성
22.08.11 08:45
조회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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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0쪽

EP 03. 잡몹이 되다 (3)

DUMMY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본 건 사방이 투박하게 각진 천장이었다. 바닥이 자꾸만 덜컹거렸다. 아무래도 군용 앰뷸런스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예전 이등병 때 행군 중 낙오하고 탔을 때와 비슷했다. 덮고 있던 담요 아래로 몸을 더듬어봤다. 옷은 완전히 찢겨 맨몸이었다.


‘젠장.’


그러다 불현듯 목걸이가 생각났다. 다행히 거기엔 차가운 무언가가 만져졌다. 빛은 잃었지만, 아까 빛을 내던 반달 모양의 목걸이가 분명했다. 꼼지락 거리는 통에 내가 깨어난 걸 눈치채고 누군가 말을 걸었다.


“깨어나셨군요. 다행히 크게 이상은 없어보이지만 입원해서 검사는 받아보셔야 합니다.”


비무장 상태에다가 중위 계급장을 단 것을 보니 군의관이었다. 하기야 게이트 몬스터 앞에서는 군의관이 아니라더라도 무장이 쓸모없었다. 게이트 몬스터에게는 화약·화학 무기가 거의 통하지 않았다. 군은 보통 민간인을 구출하거나 락스미스를 보조하는 일을 맡았다.


‘그나저나 큰 이상이 없다고? 그렇게 맞았는데.’


“그 위험한 곳에서 뭘 하셨습니까. 옷은 다 벗고.”


옷은 다 벗고 이상한 목걸이만 걸고 있었으니, 사실 목걸이에 대해서도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이를 갈면서 말했다.


“락스미스에게 공격받았습니다.”

“락스미스가 민간인을요? 그게 누굽니까.”


모든 능력을 잃고 쓰러진 박상미와 조수인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내가 라이칸스로프라고 생각하고 공격하다가 봉변을 당했지. 지금 따지고 싶은 건 다른 사람이다.


“최아인이요.”


푸른 빛의 기둥에 가려 최아인을 직접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박상미와 조수인이 최아인을 따라왔다고 말했고, 무엇보다 푸른 빛의 기둥이야말로 잠시나마 내 숨통을 끊었던 게 최아인이라는 증거였다.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세상에 최아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엘쓰리 후계자인 그 최아인 씨 말입니까.”


군의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네. 궁그닐이 내 목을···아니, 내 차를 덮쳐서 이렇게 됐습니다.”


최아인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락스미스였다. 그녀는 실린더 가장 깊은 곳까지 나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강력한 힘으로 레벨 1, 2 게이트를 완전히 닫아버렸다. 레벨 2 게이트를 견뎌내지 못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지역이 많은 데 반해, 한국이 이 정도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에는 그녀의 역할이 컸다.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키 스킬은 시전되는 것만 보면 유사한 것도 많다던데요.”

“어설픈 기술이 아니었어요. 파괴력이 엄청났다고요.”

“그럼 얼굴은 봤습니까.”

“그게···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게이트 몬스터에게 공격당했다고 하세요.”

“네?”

“선생님을 위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락스미스에게 공격당했다고 하면 보상도 못 받아요. 보험처리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군의관은 손을 들어 올려 제 목에 그었다. 정부나 군대도 어찌하지 못할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락스미스들의 횡포는 유명했다. 게다가 상대는 게이트가 열린 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난 ‘엘쓰리’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늘 밤에 차를 잃었고, 고 부장에게도 샘플을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것을 어떤 형태로건 소명해야 했다. 락스미스의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 실랑이를 하는 사이 또 해고당할지도 몰랐다.


군의관은 지나가다가 운전병에게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무너진 상점에서 청바지와 셔츠를 챙겨와서 건넸다. 내가 머뭇거리자 안심하라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어차피 국가에서···아니 엘쓰리에서 다 보상해줘요.”


그는 어쩐지 이런 일이 익숙해 보였다. 하기야 군인들에겐 지금이 전시였다. 이런 건 현지 보급쯤으로 여기겠지. 곧 병원에 도착하자, 군의관이 내려주며 당부했다.


“서울 북쪽과 경기 북부 전역의 게이트가 활성화됐답니다. 댁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남양주, 포천, 의정부, 양주 쪽으로는 가지 마세요.”


응급실에서는 간단히 수액주사를 처방해줬다. 눈에 띄는 외상이 없었고, 나도 그저 쉬었다가 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몸은 완전히 회복된 것 같았지만, 망할 고 부장에게 증빙할 게 필요했다.


‘끼잉.’


난데없이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쥐 같은 것이 응급실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피그미!”


날렵하게 생긴 작은 늑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응급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럴수록 더 주의해야 했다. 이어 다른 두 마리도 침대 위로 올라와 내 몸을 타고 뛰어놀았다. 이건 뭐 늑댄지 강아지인지.


“쉿, 조용히 해.”


어쨌든 이것들도 게이트 몬스터였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 소동이 일지도 몰랐다. 소동으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락스미스들에게 걸리면 이 귀여운 놈들의 생명도 이걸로 끝이었다. 나는 얼른 칸막이 커튼을 쳤다.


크르릉.


늑대가 이렇게 귀여운 동물이었나. 어쩌면 일종의 부성애 같은 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내가 이것들의 ‘알파’니까. 나는 그것들을 각자의 털 색에 따라 흑(黑) 백(白), 적(赤)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알아듣든 말든 하나씩 눈을 맞추고 불러댔다.


“흑, 너 왜 그래.”


갑자기 흑이 내 앞을 서성이더니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흑이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었다. 토해낸 물건은 식도와 입을 거치지 않고 흑의 입 앞에 난데없이 떨어졌다. 신비한 붉은 빛의 돌. 그것도 두 개나.


‘떠돌이별의 심장.’


나는 그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엘쓰리에서 비싼 값에 매입한다고 요란스럽게 광고를 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성을 증폭시켜준다고 했었지 아마.’


최아인이 죽인 게이트 몬스터에게서 수많은 아이템이 나왔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조수인과 박상미가 거둬 갔을 테지. 모르긴 몰라도 흑이 그 중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을 물어온 것 아닐까.


“이 복덩어리.”


그때 응급실이 요란스러워졌다. 또 다른 환자들이 이송돼 오는 모양이었다.


“흑, 다시 삼켜. 할 수 있지?”


흑이 말을 알아듣기를 바라는 내가 참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흑은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것을 꿀꺽 삼켰다. 아니 삼킨다기보다 흑의 안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들은 알파의 의지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커튼 너머로 방금 들어온 환자들이 보였다. 의료진이 부산하게 달려들었다. 나는 곧 환자들의 얼굴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 백 팩과 운동복. 아니, 조수인과 박상미였다.


“조수인 씨, 여기, 허리는 괜찮으세요?”


정신을 잃고 살기가 걷힌 박상미는 매우 앳돼 보였다. 조수인은 의료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매우 침통해 보였다. 그러더니 곧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저들은 모든 능력을 잃었을 거였다.


“씨발, 열쇠 없인 아무것도 아닌 세상···.”


*



집에 돌아와서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목걸이가 벗겨지지 않았다. 목걸이가 닿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선명한데도, 벗기려고 하면 손이 닿지 않았다. 그냥 만지작거릴 때는 분명히 거기에 있다가도, 벗으려고 마음먹는 순간 감촉이 사라졌다.


“아이템이 귀속된건가.”


그래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 집에 오는 내내 고 부장에게 계속 연락이 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긴 문자도 계속 날아왔다. 요약하자면 업무지시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징계하겠다는 거였다.


고 부장은 신호가 두 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안 대리, 내가 이 시간까지 퇴근도 못 하고 기다려야겠어? 대표님한테 보고도 못 하게 생겼는데 이제 어쩔 거야.”


전화 너머 목소리는 차분했다. 문자의 분노도 지금의 차분함도 진짜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나를 쫓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거였다. 토악질이 날 것 같은 것을 참고 말했다.


“퇴근해서 보고하시지 그러셨어요. 같은 집 사시잖아요.”

“뭐?”


그래, 이제야 상황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대꾸한 고 부장을 다시 한번 몰아붙였다.


“거기 게이트 열린 거 아셨어요, 부장님?”

“······.”

“대표님한테 미리 연락받으셨죠. 대표님은 그런 거 다 아시니까···.”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오빠도···아니 대표님도 다 아는 건 아냐."

"억지부리지 마세요."

"안 대리 왜 이래? 남양주 지사에 가지도 않았을 거 아냐, 괜히 덤터기 씌우지 마.”


대꾸하는 대신 군의관이 내어준 게이트 지역 내 피해 사실 확인 증빙서류와 응급실 진단서 사진을 고 부장의 휴대전화로 보냈다.


“날 밝는 대로 증빙서류 원본도 보내겠습니다. 남양주 지사에 가라는 게 부장님의 지시라는 증거는 방금 통화를 비롯해 차고 넘칩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내일 하루 쉴 테니까 찾지 마세요.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는 알죠?”


뭐긴 징계는 꿈도 꾸지 말란 소리지. 고 부장은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다. 곧 메신저로 ‘쉬어’라고 한 마디만 보내왔다. 마음 같아서는 부당노동행위를 문제 삼고 싶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찾아온 전쟁 같은 세상은 그런 ‘말랑말랑’한 개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래도 한 방 먹였다.”


작은 승리에 만족하자. 밤은 아직 기니까. 창밖에는 거의 원형에 가까운 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조금 더 차면 나는 다시 늑대가 되는 걸까. 아니, 집어치우자. 지금은 살아남은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흑, 백, 적.”


쪼르르. 마치 강아지처럼 뛰어나온 조그마한 늑대들이 마음을 즐겁게 했다. 거기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찾아본 바로는 엘쓰리는 ‘떠돌이별의 심장’을 한 개에 무려 삼천만 원에 사들이고 있었다.


“차값은 벌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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