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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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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0 14:03
최근연재일 :
2022.09.26 21:1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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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0
추천수 :
71
글자수 :
179,806

작성
22.08.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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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추천
6
글자
11쪽

EP 02. 잡몹이 되다 (2)

DUMMY

“커엉.”


내 신세 한탄이 락 스미스들에게는 설익은 위협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리폰을 때려잡았던 ‘백 팩’이 살벌하게 말했다.


“재촉하지 마, 얼른 죽여줄게.”


그러나 운동복은 처음의 기세등등하던 모습과 달리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백 팩이 뒤처진 운동복을 채근했다.


“야, 박상미. 정신 차려.”


운동복은 마지못해 앞으로 나섰다. 그러는 사이 나는 상황을 점검했다. 저들을 설득할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전혀 없다. 정면 승부를 해 보는 건 어떨까. 그것도 어렵다. 아무리 빈사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그리폰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그리폰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잠깐. 눈과 귀가 인간일 때보다 훨씬 쓸 만해졌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그럼 발톱과 이빨도 마찬가지겠지?


-끼이이익.


철판을 이빨로 물고 발톱으로 철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몸을 구속하고 있던 차체의 철판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그저 몸부림쳤을 뿐인데 몸을 구속하고 있던 철판들이 비명을 지르며 벌어졌다. 나는 얼른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라이칸스로프가 된 내 몸이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이 났다. 그리폰을 개 패듯 팬 백 팩의 몸은 아직도 부풀어 오른 상태였는데도,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 볼만큼 키 차이가 났다. 이야기 속 악당들이 ‘꼬마’ 운운하는 뻔한 대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게 이해 갔다.


“크(조)···.”


입을 열기가 무섭게 온몸에 엄청난 충격이 덮쳐왔다. 눈 깜짝할 새 날아온 백 팩의 주먹이 내 몸을 콘크리트 벽에 처박아버렸다. 인간의 몸이 아닌 덕분인지 생각보다 통증은 크지 않았지만 힘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조그만 꼬맹이’로 시작하는 부끄러운 도발을 끝까지 내뱉지 않아 다행이었다.


“얘 좀 봐. 맷집 세네?”


내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지 알았다면 저런 말을 못 했을 거야. 저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내가 사실은 인간이라는 것과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것들.


절박하게 내가 가진 능력들을 검토했다. 생각하자,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까.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백 팩은 나를 계속 두들겨 팼다..


“카아악.”


이번에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운동복도 나섰다. 그녀는 한 손에 열쇠를 쥔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일별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 야구방망이에 검은 쐐기들이 하나둘 날아와 못처럼 박혔다.


【KEY-매가 약】

[스킬 발동 : 난타! 구타!]


‘개처럼’ 맞고 있는 나에게는 물리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타격을 주는 키 스킬이었다. 방망이로 맞을 때마다 온몸의 근육과 뼈를 헤집어 놓는 맹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런 고통은 인간의 몸이건 라이칸스로프의 몸이건 견뎌낼 수 없었다.


“버티지 마···얼른 정신 놓는 게 편할 거야.”


가까이서 본 운동복의 손에는 금빛 열쇠가 들려 있었다.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에너지의 흐름이 운동복의 손에 쥔 야구방망이로 스미고 있었다.


뒤이어 백 팩도 가세했다. 두 사람은 락 스미스 중 가장 흔하다는 단순무식 무투파였다. 라이칸스로프로의 삶도 굴욕적으로 끝나는구나.


‘어?’


그때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스킬 하나가 있었다. 열쇠는 없지만, 게이트 몬스터의 본능이 이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우···크···우우···.”


인정사정없이 구타당하던 중이라 볼품없이 끊어지긴 했지만, 하울링을 뽑아냈다. 어쩐지 아까보다 더 처량한 모습이 된 것 같았지만 살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곧 귓가에 이상한 메시지가 들려왔다.


[스킬 발동 : 알파의 자격]

[알파의 자격 : 당신은 오크 알파의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알파의 자격 : 당신은 흡혈박쥐 알파의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알파의 자격 : 당신은 고블린 알파의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귓가를 가득 메운 알림음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시끄러워, 곱게 죽어.”

“닥쳐, 닥쳐, 닥쳐.”


운동복과 백 팩은 내 울음소리에 이상하게 흥분한 듯 날뛰었다. 특히 운동복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금 울고 싶은 게 누군데.


“커어억.”


아닌 게 아니라 더 버티기 힘들었다. 인간의 본능은 일찌감치 경고등을 울리고 있었고, 라이칸스로프의 강건한 육체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무릎 꿇고 빌어봐야 늦었겠지?


‘끝이구나,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그때 알림음이 또 한 번 들렸다.


[알파의 자격 : 피그미 늑대가 당신을 알파로 인정했습니다.]


‘뭐라고?’


흐릿해져 가는 시야 너머로 운동복의 등 뒤에 무언가 달라붙는 게 보였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눈치도 못 챌 만큼 작았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그것은 햄스터만큼이나 작지만, 분명히 살아 숨 쉬는 네발짐승이었다.


아우우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늑대 세 마리는 짧은 하울링과 함께 운동복의 양쪽 허벅지와 허리를 깨물었다.


“으아악, 따가워.”


그래, 따가운 정도였겠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몸을 털어내고 있는 그녀의 목을 있는 힘껏 물었다.


“으아아악···. 끄어어···.”


이 이빨은 제법 쓸만하지. 그녀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빨에서 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흐르는 건 피가 아니라 락 스미스의 생명을 보호하는 ‘열쇠의 정수’일 테지. 그녀의 손에서 열쇠가 소멸하는 게 보였다.


“상미야!”


뒤늦게 백 팩이 팔꿈치를 들어서 내 머리를 내려찍었다. 운동복은 이미 정신을 잃은 후였지만, 나도 곧 까무러칠 것처럼 아팠다.


-[야구소녀] 박상미를 해치웠습니다. 박상미가 당신에게 원한을 품습니다.


게이트 몬스터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야구소녀는 방금 쓰러트린 락스미스의 콜사인인 것 같았다.


-원한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3/5]


게이트 몬스터는 락스미스의 원한으로 강해진다는 게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 이름을 갖는 유일 등급 몬스터와 각 게이트를 담당하는 게이트키퍼들은 얼마나 사무치는 원한을 쌓은 걸까.


-스킬을 강화하겠습니까. [Y/N]


당연하지 뭘 물어. 그렇게 마음먹자마자 새로운 알람이 떴다.


[게이트몬스터 : S-103. 라이칸스로프]

【분류】 잡몹

【숙주】 no. 683 안현중

【등급】 일반

【원한】 [3/5]

【스킬】 제법 쓸만한 눈 LV. 3 제법 쓸만한 귀 LV. 3 제법 쓸만한 코 LV. 3 제법 쓸만한 이빨 LV. 3 제법 쓸만한 발톱 LV. LV. 3 알파의 자격 LV. 3

【착용 아이템】 변덕을 즐기는 이의 가호


“이 미친개가.”


백 팩의 주먹은 여전히 묵직하고 빨랐다. 순식간에 난타당한 오른쪽 뺨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동료가 당하는 모습을 본 후 완전히 평정심을 잃은 상태였다.


“죽어, 이 쓸모없는 개새끼야.”


발광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직 승산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락 스미스가 아니라 평범한 ‘좋소’ 기업 직원이라서 더 잘 아는 게 있다. 이 냉혹한 세상에서는.


“크르릉(흥분하면 진 거야.).”


백 팩이 순간적으로 자기가 휘두른 주먹의 무게를 못 이겨 비틀거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목덜미를 물었다. 하지만 무식하게 부풀어 오른 승모근이 이빨을 가로막았다.


“아악, 이게···. 놓지 못해?”


백 팩은 그사이 발버둥 치면서 내 복부를 난타했다. 내장을 토해낼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꾹 눌러 참고 조금씩 조금씩 이빨을 더 박아넣었다.


뻐걱.


뼈가 부러지는 소리 같았지만, 사실은 백 팩의 생명을 대신해 열쇠가 파괴되는 소리였다. 그녀의 눈이 초점을 잃었고 곧 사방이 조용해졌다.


-[머슬퀸] 조수인을 해치웠습니다. 조수인이 당신에게 원한을 품습니다.


살아야겠다. 이런 모습이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턱대고 걸었다. 아니 기었다. 일단 이곳을 피해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발을 뗄 수 없었다. 누군가 내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채는 느낌에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눈먼용 바이자르의 3레벨 지역 게이트(게이트키퍼 모놀린)가 당신을 구속합니다.


그래. 게이트 몬스터는 지박령처럼 게이트에 귀속된 존재라고 들었다. 이런 모습이 된 이상 나도 똑같은 제약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건 게이트 몬스터를 소환한 ‘눈먼용 바이자르’는 둘째치고, 이 지역 게이트 키퍼가 죽지 않으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크르릉···.”


입을 닫아야지. 체념도 마음대로 못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락스미스, 아니 조수인과 박상미를 제압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열쇠를 잃는 건 모든 걸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죽어주는 게 맞았다.


‘어차피 그게 잡몹의 존재 이유인 것을···.’


그러나 그때 가슴팍에서 붉은빛이 은은하게 솟았다. 신경쓸 틈이 없어서 몰랐지만, 거기에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붉은 반달 모양의 고정된 장식이 붙은 목걸이였다. 그때 또 다른 메시지가 귓가에 들려왔다.


-‘변덕을 즐기는 이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그러자 반달 모양이 정확히 반대로 돌아섰다. 장식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빛도 어느새 푸른 빛으로 변했다. 갑작스러운 현기증이 밀려왔다. 목걸이를 감싸고 있던 잿빛 털이 사라지면서, 연약하고 상처 입은 가슴이 드러났다.


-눈먼용 바이자르의 3레벨 지역 게이트(게이트키퍼 모놀린)의 구속에서 풀려납니다.


기쁨도 잠시, 어느새 인간으로 돌아온 몸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더는 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인간의 성대로 지금 당장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을 단말마처럼 뱉어냈다.


“고명태···이 개새끼야···.”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늑대 세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들이 열심히 볼을 핥아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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