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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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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0 14:03
최근연재일 :
2022.09.26 21:1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3,919
추천수 :
71
글자수 :
179,806

작성
22.08.10 18:30
조회
429
추천
10
글자
12쪽

EP 01. 잡몹이 되다 (1)

DUMMY

죽거나 혹은 살거나.


자동문 제작회사 ‘바리 게이트(bari gate)’에서 보낸 지난 2년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동안 회사는 어떻게든 나를 내보내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 처음에는 치졸한 따돌림 위주였지만 갈수록 위험한 방법도 동원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좀 심하네.”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차창 밖 풍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남양주 주거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허리가 꺾인 고층 아파트가 나타났다. 주변엔 콘크리트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가로등과 우유갑처럼 구겨진 자동차들이 흩어져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면 나타나는 ‘게이트 몬스터’가 휩쓸고 간 흔적이었다.


‘고 부장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구나···.’


몇 시간 전, 고주경 부장이 퇴근 준비를 하다 말고 나를 불렀다. 그녀가 내게 퇴근 무렵에 되지도 않는 일을 시키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아니 사실 그게 고 부장의 주요 업무나 마찬가지였다.


“안현중 대리, 내일 아침 일찍 대표님께 보고드릴 샘플이 남양주 지사에 있는데, 지금 가서 좀 가져다줘.”

“지금요?”

“그래.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좀 있어서. 가지고 올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릴게.”


고 부장은 짐짓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연기는 갈수록 늘어갔다. 이 년 전 만 해도 이런 지시를 내릴 때는 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오빠 고 대표가 맡긴 악역에 그녀도 점점 몰입해 갔다.


고 대표가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마디였다.


“내가 더러워서 때려치우고 만다.”


마음속으로야 수없이 했던 말이다. 더군다나 사람 목숨까지 걸린 이런 상황에서는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었다. 2년 전 게이트가 열린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인 세상에 가장 먼저 적응한 건 정부도 종교단체도 시민들도 아닌 기업이었다. 기업은 게이트 몬스터용 방산 장비를 만들고 아이템을 사고, 팔았으며, 협회를 만들어 힘을 키웠다. 정부가 노동법 운운하면서 기업을 견제하는 게 매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바리 게이트를 나간다해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어떤 회사든 토익, 학점, 자격증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스펙’이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면서 갑자기 생긴 ‘각성’이라는 스펙.


솔직히 기대했다. 세상은 게이트가 열리면서 지옥처럼 바뀐 게 아니었다. 원래 지옥 같던 세상에 게이트가 하나 더 열린 것뿐이었다. 그동안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각성’이란 기적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고립시키기만 한 세상이 격렬히 흔들릴 때 거기에서 기적을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적은 나를 배신했다. 아니 아주 많은 사람을 배신했다. 각성은 외면받아온 이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기적 같은 게 아니었고, 이미 가진 자산과 시간, 사회적 능력으로 쟁취해나가는 능력에 가까웠다. 누굴 탓하겟는가. 거머쥐지 못한 내 탓이지.


결국 고 부장에게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녀와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고 부장은 평소와 다르게 씩 웃기까지 하면서 반색했는데, 내가 지시를 절대로 이행하지 못할 상황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징계하려 들 게 뻔했다.


드르르르.


그때 가슴이 철렁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 전화 진동이 울렸다.


안전 안내 문자

[남양주시청] 6.17. (화) XX 초등학교 인근에서 소형 12개체 발견▶지하 벙커 위치 안내 vo.la/


XX 초등학교는 남양주 지사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다. 그건 남양주 지사로 가다가는 틀림없이 저승으로 직행할 거라는 뜻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이겼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결국 포기하고 황급히 차를 돌리는데 헤드라이트 불빛 안으로 뭔가가 들어왔다.


무엇인지 알아챈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


그건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이었다. 참담했다. 고 대표는 내가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거면 저렇게 죽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대표가 뭐고 기업이 뭐라고 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단 말인가.


“사람 취급을 안 하는구나, 개 같은 놈.”


그래. 마치 시신을 대하듯. 아니 망자에게라면 짐짓 예의라도 갖췄을 테니 그마저 하지 않은 셈이다.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모멸감이 들었다.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공포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멀리에서 한 맺힌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쾅.


한 서린 울음소리의 뒤를 이은 건 모든 감정과 떨림을 억누를 만큼 커다란 폭음. 더 머뭇거리면 틀림없이 죽는다.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끼이이익, 콰콰쾅.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 정신을 차린 나는 보닛 위에 널브러진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늑대였다. 아니 정확히는 대가리뿐인 늑대였다. 그것은 TV로 보거나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커서, 눈동자가 거의 야구공만 했다. 실핏줄이 잔뜩 선 그것의 눈을 홀린 듯 바라보다가 그 너머에서 줄지어 달려오는 그림자들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게이트 몬스터.’


흉물스럽게 생긴 온갖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저것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낸다는 게이트가 근처에 있는 게 분명했다. 우선 피하려고 했지만, 차가 고장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바윗덩어리 같은 늑대의 대가리가 투석 무기처럼 날아와 차체를 완전히 찌그러트려 놨다.


“고명태 이 개새끼야!”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욕을 하면 누군가가 듣고 달려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게 아니라면 이 한 맺힌 마음이라도 풀고 죽고 싶었다.


“넌 내가 꼭 죽인다, 사이코패스 새끼야!”


하지만 그것으로 마음이 풀릴 리 없었다. 글로브박스를 발로 차고 핸들을 때리면서 발광할 때마다 본닛 위에서 들썩이던 늑대의 대가리가 꿈틀거렸다. 그래, 억울하지? 나도 억울하다 인마.


“억울하다고!”


그때 늑대의 대가리가 마치 대꾸라도 하듯 흔들렸다. 이어서 그것의 뒤통수 쪽이 환하게 밝아왔다. 푸른 빛, 아니 푸르고 뾰족한 빛의 기둥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늑대의 머리를 꿰뚫고도 멈추지 않은 그것은 이내 내게로 뻗어왔다. 목에 선뜩한 기운이 느껴진 것도 잠시.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역시 최아인은 다르네요.”

“말했잖아. 따라만 다니면서 비실비실한 놈들 쓰러트리고 열쇠 모으는 건 일도 아니라고.”


눈을 뜨기 어려웠지만, 이 말들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100여 미터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이토록 분명하게 잡아내는 내 귀가 낯설었다. 또한 두 사람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피비린내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코도 정상이 아니군.’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두 여자가 상처 입고 쓰러진 게이트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노란빛이 반짝였다. 게이트 몬스터의 숙적인 각성자 집단 ‘락 스미스(LockSmith)’였다.


“사···살려···줘.”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는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목을 다친 것 같았다.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폐허가 된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거. 그리폰이에요. 이런 놈까지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게 만들다니···.”


운동복 차림의 20대 여성이 커다란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날개를 단 괴물을 보며 말했다. 차마 다가서지는 못한 채 손을 앞으로 내밀어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쥔 건 금빛 열쇠. 그때 또 다른 여성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그래봐야 이렇게 다쳤는데 뭐 그리 겁을 먹어.”


그녀는 등에 메고 있던 백 팩을 한 번 추켜올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앞으로 내밀었다.


【KEY-법보다 주먹】

[스킬 발동 : 근육이 답이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 같은 위화감과 함께 ‘백 팩’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락 스미스의 ‘키 스킬(Key skill)’이었다. 친한 친구이자 락스미스인 강시윤이 알려준 적이 있다. 락스미스는 모두 각자의 성향에 맞는 키 스킬을 찾게 된다고.


“그걸 찾아 헤매는 게 우리가 실린더(SEAlinder) 안에서 하는 일이야.”


락 스미스는 평범한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문과 문이 맞닿은 실린더라는 공간에서 얻는 키 스킬이야 말로 그들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줬다.


내 눈앞에서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저 여자는 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근육만능론자 뭐 그런건가.'


거대한 석상처럼 단단해진 여자는 맨손으로 그리폰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울부짖는 그리폰의 울음소리는 얼마 못 가 잦아들었다.


“열쇠 조각을 두둑하게 주네요.”

“그럼.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을 놈인데. 이 정도는 돼야 보람이 있지.”


저들이 뭘 얻었는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게이트 몬스터를 없앨 때마다 락스미스 힘의 근원인 열쇠와 그 조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뭐가 됐든 사냥이 얼른 끝나기를 바랐다. 그래야 다친 나를 신경이라도 쓸 테니까.


“숨이 붙어 있는 놈이 하나 더 있어요.”


‘운동복’이 살기 등등한 눈으로 내가 있는 쪽을 노려봤다. 주변을 둘러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여기에 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설마, 나? 아무리 꼴이 엉망이기로서니 나를 왜 몬스터로 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해야. 오해라고.’


두 사람이 뚜벅뚜벅 다가오자 다급함에 소리를 지르기 위해 애썼다. 콘크리트로 막히기라도 한 듯 열리지 않던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결국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커엉, 크르르릉. 킁.”


어? 내 귀에 닿은 소리를 믿을 수 없었다. ‘삑사리’가 나는 정도로는 결코 날 수 없는 괴이한 소리. 그야말로 개소리. 목소리와 함께 몸에도 힘이 조금씩 돌아왔다. 고개를 가눌 수 있게 되자마자 룸미러를 바라봤다.


“저 멍멍이 아직 기운이 넘치네.”


룸미러에 담긴 건 멍멍이, 아니 늑대였다. 어떻게 된 거지? 그때 허공 위에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게이트몬스터 : S-103. 라이칸스로프]


【분류】 잡몹

【숙주】 no. 683 안현중

【등급】 일반

【원한】 [2/5]

【스킬】 제법 쓸만한 눈 LV. 2 제법 쓸만한 귀 LV. 2 제법 쓸만한 코 LV. 2 제법 쓸만한 이빨 LV. 2 제법 쓸만한 발톱 LV. 2 알파의 자격 LV. 2

【착용 아이템】 변덕을 즐기는 이의 가호


내가 처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정보와 수치들이었다. 기적이나 기연,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임 상태창 같은 건 아니었다. 오직 내 육체가 얼마나 쓸만한 지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락스미스의 메뉴판이네. 아니 돼지고기 이력 카드인가.’


락스미스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사냥을 앞두고 들뜬 모습이었다. 직장에서 내내 괴롭힘 당하다가 누군가의 경험치로 끝나는 게 내 인생이었다니.


'기적? 기연? 개같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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