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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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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0 14:03
최근연재일 :
2022.09.26 21:11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3,579
추천수 :
68
글자수 :
179,806

작성
22.08.17 18:20
조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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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EP 14. 잡몹 아지트 '리젠' (3)

DUMMY

집에 돌아오자마자 흑, 백, 적을 불렀다. 녀석들은 이서영과 툭탁대다 부리나케 달려와 내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거나 타고 올랐다. 흑, 백, 적의 삼색 재롱만으로도 하루의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왜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알 것 같았다.


“아, 정신 차려야지.”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을 도로 찾고 이서영에게 SFZ-038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또 다른 유일 등급 잡몹이 나타났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곧 목소리에 어두운 기색이 감돌았다.


“1~2레벨 게이트 몬스터는 거의 없잖아요.”


그 말을 듣고나서야 이서영이 왜 순식간에 침울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거의 없겠죠, 이젠···.”


월드게이트키퍼를 쓰러뜨리고 나면 지역 게이트키퍼은 모두 ‘디스월드’로 귀환한다. 그러면 남은 게이트 몬스터는 통제를 잃고, 그 자리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다음에 벌어지는 일이야 뻔하다. 락스미스들이 그악스럽게 달려들어 마무리를 해버렸다.


“초기 잡몹은 모두 살해당했을 겁니다.”


게이트가 열린 후 2년 동안 수많은 인간과 게이트 몬스터가 죽었다. 그건 또한 선과 악, 옳고 그름이 아주 분명하게 나뉘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인간이면서 또 게이트 몬스터이기도 한 것들이 그 사이에 끼어서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


“같이 가요.”


상념을 깬 건 이서영의 목소리였다. 침울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 바리 게이트의 자재창고에서 그녀를 찾아냈을 때나 그녀를 옭아맨 게이트키퍼에게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내 목소리가 저랬을까.


“그래요 함께 가요. 그 잡몹, 아니 ‘SFZ-038’에게도 신호기가 있을 거예요.”


SFZ-038을 처음 구속했던 게이트키퍼는 디스월드로 돌아간 게 분명했다. 그가 그러고도 고블린들과 함께 오피스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건, 게이트키퍼가 없어도 신호기는 계속 작동한다는 뜻이었다.


*


흑, 백, 적은 등에 멘 가방에 담겨 있었다. 퇴근길에 사 온 반려견용 이동장이다. 이동장에 붙은 아크릴판 너머로 녀석들이 귀엽게 꼬물대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곧 싸움이 시작되면 무섭게 날뛸 녀석이다. 게이트 몬스터의 언어로 나지막이 말했다.


<낮에는 7층에 있었어요.>


밤에 본 바리 오피스텔은 폐가 수준이었다. 평범한 인간보다 몇 배는 강해졌지만, 저 어둠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변덕을 즐기는 이의 가호’를 손에 쥐고 장식품을 한쪽으로 돌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붉은 섬광과 함께 털과 이빨이 자라났고, 눈이 맑아졌다. 어둠이 봄날의 햇살처럼 차분하고 따듯하게 시야를 채웠다.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오피스텔 상층부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스킬 발동 : 알파의 자격]

[알파의 자격 : 고블린이 당신을 알파로 인정했습니다.]


어라? 맵핵 좀 켜고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이 스킬은 예상 밖의 상황에 발동하는 경향이 있군. 곧 고블린 다섯 마리가 어둠 속에서 달려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이서영이 슬며시 물었다.


“얼마나 팬 거예요···?”


정말 한 번 제압했기 때문에 스킬이 통한 건가. 우리는 여전히 겁을 집어먹은 것 같은 고블린들을 앞세워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비상계단을 타고 7층까지 바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이서영은 미리 준비해 간 손전등을 입에 물고 따라왔다. 계단을 4층쯤 올랐을 때였다.


-크아아악


앞장서서 올라가던 고블린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고블린과 똑같은 생김새의 그림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기계 고블린!>


낮에 봤던 기계 고블린이 이번에는 셋이나 나타났다. 일단 고블린들을 시켜 기계와 맞서게 했으나 아무래도 힘이 달렸다. 흑, 백, 적도 달려 나가 기계 고블린들을 교란했다. 다행히 공간이 좁아 화염방사 같은 공격은 하지 않았다.


<서영 씨, 아까 부탁한 거요.>


이서영은 유리병 몇 개를 뱉어냈다. 거기엔 철갑산호의 점액이 가득 차 있었다. 기계장치의 작동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어서 게이트 1~2레벨 교차기에는 불티나게 팔렸던 물건이다. 장한용 팀장은 지금은 쓸 데가 없어 재고로 쌓여 있던 물건을 내가 산다고 하자 반색하며 덤까지 담아 넘겼다.


<이게 덤 폭탄이다.>


유리병이 깨지면서 복도에 점액이 가득 찼다. 곧 사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갑산호의 점액에 기생하는 아주 작은 철갑 플랑크톤이 기계 고블린의 내부로 파고드는 소리였다. 끈적한 점액에 발이 묶인 고블린 두 마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덩달아 움직임이 둔해진 ‘베타 고블린’들이 안간힘을 쓰며 기계 고블린을 공격했다.


“현중 씨, 한 놈이 도망가요!”


한 놈이 계단을 타고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머리에 찌그러진 자국이 그대로 남은 걸 보니 낮에 본 녀석이었다. 고블린에게 의미 없이 동전을 뱉어대는 이서영을 들춰 메고 녀석의 뒤를 따랐다. 하여간 짐스럽군.


“와, 여긴 뭐 상황실인가 봐요?”


7층으로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7층은 건물 내부의 격벽과 기둥이 완전히 제거돼 하나의 너른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천장과 벽은 깔끔한 내장재로 마감돼 있었는데, 그 안에 수많은 회로와 회선이 깔려 있다는 걸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저쪽을 봐요, 서영 씨.>


동관과 서관이 맞닿은 외벽에 커다란 통로가 뚫려 있었다. 서관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그때 앞서 도망갔던 기계 고블린이 거기에서 걸어나왔다.


“현중 씨, 현혹되지 마요.”

<알아요, 진짜는 저 뒤에 인간형.>


마침 기계 고블린 등 뒤 외벽에서 인간형 로봇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공격을 어지간히 의식하는 듯 했다. 서관으로 이어진 통로 위에 발을 디딘 채 여전히 창밖에 매달려 있었다.


“아니요, 진짜는 저 에어컨.”

<에어컨이요?>


아, 실외기. 그러고 보니 건물의 모든 자재나 짐들이 깔끔하게 치워졌는데, 에어컨 실외기 하나만 외벽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저게 ‘신호기’구나.


“내가 시선을 끌게요.”

<동전으로요?>


이서영은 심통을 부리며 내 팔뚝에 동전을 퉤퉤 뱉었다. 그녀가 성큼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서자, SFZ-038가 볼트와 너트를 있는 힘껏 던졌다. 아니, 총이 아니었어? 저건 거의 돌팔매네.


-후두두둑.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동전이 연이어 날아갔다. 볼트 너트와 충돌한 동전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팽팽한 긴장감. 이 허접한 싸움 재밌네.


“구경났어요? 틈을 봐서 실외기를 노리라니까요.”


넋을 놓고 있던 나는 이서영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디 보자. 기계 고블린은 SFZ-038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보호하는 건가? SFZ-038의 공격 패턴이 저것뿐이라는 가정하에 ‘자강두천’ 싸움의 다음 합을 틈타면 될 것 같았다.


-후두두둑


이때다. 다리에 응축하고 있던 힘을 한 번에 쏟아냈다. 교전의 중심부를 피해 실외기로 날아가는 최단 경로를 택했다. 튕기듯 날아가는 동안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동전과 볼트, 너트는 지루하도록 느렸고, 기계 고블린의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도 더뎠다.


‘잡았다.’


실외기를 파괴할 수 있다고 확신한 순간, 벽면이 뒤집히면서 수많은 무인 화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한 상태라 공격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온몸에 쏟아진 탄환은 가죽을 뚫진 못했지만, 타격이 엄청났다. 나는 바닥으로 그대로 널브러졌다.


“괜찮아요, 현중 씨?”

<소, 속이 뒤집힐 것 같아요.>


설상가상 기계 고블린이 날 듯이 내 앞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앞을 막아설 뿐 공격은 하지 않았다. 왜 화기 공격을 쏟아붓지 않는 거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을 때 몸에서 탄두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렇지, 재장전. 그리고 물리적인 총알 말고도 필요한 게 또 있을 것이다.


‘스킬 쿨타임이군.’


“커엉(흑, 백, 적!)”


날래게 달려간 적이 먼저 앞발로 기계 고블린을 후려쳤다. 잘못 본 건가? 적은 몸통의 크기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앞발만 순간순간 크게 만들어서 기계 고블린을 공격하고 있었다. 기계 고블린은 사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앞발에 속수무책으로 타격을 입고 있었다.


동시에 백은 곧바로 내 몸으로 타올라 상처를 핥았다. 숨도 못 쉴 만큼 온 몸을 조여왔던 통증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기계 하수인에게는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지.’


적과 공격을 주고받던 기계 고블린의 턱을 있는 힘껏 때렸다. 공격은 앞발-이렇게 표현하긴 싫지만-에 제대로 걸렸다. 락스미스들도 한 방에 내가 떨어지던 공격에 적중당한 녀석은 복도 한쪽 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곧 쿨타임이 끝나겠지?


“크르릉(백, 흑, 적!)”


부르는 순서에 따라 달라지는 고유의 명령을 훈련해놓은 차였다. 적이 앞서면 일제 공격, 백이 앞서면 산개 및 후퇴, 흑이 앞서면 교란과 추적. 피그미 늑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마자 벽에서 총구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일부러 실외기 쪽으로 스텝을 밟았다가 뒤로 껑충 뛰었다. 실외기 앞으로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와···아까 내가 저걸 다 맞고 살아남은 거야?’


아직 온몸이 쑤셨다. 얼른 마무리하고 제대로 치료받아야 한다. 위기를 감지한 인간형 로봇이 뒤늦게 볼트와 너트를 던졌지만, 이서영에게 저지당했다. 벽에 처박혀 있던 기계 고블린이 뒤늦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늦었다. 있는 힘껏 내지른 내 발톱은 창문을 깨트리고 내쳐, 실외기를 꿰뚫었다.


-비비빅.


순간적으로 실외기에 주입되던 어떤 에너지가 차단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레벨 유일 등급 게이트 몬스터를 인계받았던 3레벨 지역 게이트키퍼 하나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내게는 차갑고 튼튼한 사슬을 끊어내는 희열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때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들···뭐야.”


입을 연 건 기계 고블린이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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