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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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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0 14:03
최근연재일 :
2022.09.26 21:1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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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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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자수 :
179,806

작성
22.08.1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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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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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 11. 경험치가 될 순 없어

DUMMY

지금은 절대 황태우를 이길 수 없다. 게이트 몬스터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일반 게이트 몬스터는 분명히 질 거란 걸 알고도 락스미스에게 덤벼든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고, '권토중래'에 성공한 수많은 인간들의 역사를 보면서 자랐다.


'순순히 경험치가 되주는 일은 없어.'


나는 적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조금 고난이도 명령인데 잘 이해하려나. 우려와 달리 적은 훌륭하게 말귀를 알아들었다. 몸을 원래 크기로 줄였던 적은 황태우에게 달려드는 와중에 갑자기 몸을 키워 '몸통 박치기'를 했다.


“어어어어.”


팔에 도쟁이를 끼고 있던 황태우는 균형을 잡느라 애썼고, 적은 들이받은 기세 그대로 멀찍이 튕겨져 나왔다. 그런 적의 등 위로 올라 타며 순간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 달빛 은신]

[피그미 늑대 ‘적’이 달빛에 숨어듭니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다. 황태우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그가 얼빠진 표정으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게 머리를 다 쓰네, 라고 한 것 같은데. 그럼 내가 경험치 주려고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게임 속 몹인 줄 알았니.


【KEY-현질】

[스킬 발동 : 초보 패키지! 3,900₩]


순간 등 뒤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녀석이 마구잡이로 휘두른 손바닥에 등짝을 강타 당한 것이다. 달빛 은신은 어지간한 물리적 충돌도 빗겨갈 수 있지만, 그의 공격이 스킬의 회피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다.


엄청난 고열로 등이 화끈거렸다. 전기 파리채에 강타당한 파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적의 갈기를 붙잡고 버텼다.


“거기 있었구나!”


은신은 풀렸지만 다행히 적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


적은 내 지시대로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적은 나를 태우고도 지형지물을 무시하며 쏜살같이 달려 나갔지만, 황태우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뒤따랐다.


【KEY-현질】

[스킬 발동 : 속도X2 패키지! 5,900₩]


우리는 지그재그로 달리며 황태우를 따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녀석은 좀처럼 뒤처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잡힌다. 마지막 있는 힘을 짜내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 알파의 자격]

[알파의 자격 :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알파의 자격 :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알파의 자격 :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연이어 들리는 스킬 취소 알림. 이놈의 스킬은 언제 발동되는 거야. 다행히 지금은 알파의 자격을 입증할 생각이 없었다.


[알파의 자격 : 오우거가 당신의 자격에 의심을 품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곧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는 이질적인 냄새를 느꼈다. 이게 오우거일테지. 적은 쏜살같이 내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때 등 뒤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KEY-현질】

[스킬 발동 : 투척 무기 구입! 마일리지 사용]


무형의 창이 날아와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창이 꽂힌 자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와 미친 놈, 과금 모델 꼬락서니하고는.’


폭연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커다랗고 억센 기둥이 눈앞에 나타났다. 유일 등급 게이트 몬스터도 함부로 못한다는 중량급 일반 게이트 몬스터 오우거였다. 실물로 보니 오줌 지리게 생겼다. 녀석은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이 소란 통에!


“크아아아앙.”


나는 달리는 자세 그대로 바닥의 보도블록 하나를 후벼파 녀석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그만 일어나! 다행히도 오우거는 우리가 녀석의 사선을 넘어서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놈이 맞닥뜨린 건 황태우.


등 뒤에서 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적의 등에 엎드려 의식을 잃어가는데 폭음 사이로 황태우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시발, 놓쳤네. 서두르느라 과금이 부족했어.”


*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졌다. 백이 다가와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까무러쳤을 것이다. 백이 핥아줄 때마다 통증이 조금씩 가셨다. 뒤늦게 이세영이 겅중 뛰어 다가왔다.


<현중 씨, 괜찮아요?>

<죽겠어요···.>


다행히 일단 목표한 바는 다 이뤘다. 도쟁이를 처리했으니 당분간 뒤를 밟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원한 수치도 많이 올렸다. 분명한 건 내가 계속 강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라이칸스로프의 회복 속도는 마치 치유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빨랐다. 하지만 이번에 입은 상처는 너무 치명적이었는지 시간이 좀 걸렸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일어나니,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백이 내 옆에 잠들어 있었다.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네.'


-아이템 ‘변덕을 즐기는 이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좁은 방 안에 푸른 빛이 번쩍였다. 빛을 뚫고 곧 인간의 몸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맨몸이 아니었다. ‘성장판 리미트가 제거된 소인족 용사의 갑옷’이 내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변신할 때마다 새 옷을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이걸로 끝이다.


그때 흑이 창밖에서 나타났다. 흑은 창문을 타넘어 들어오자마자 어슬렁어슬렁 이서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워온 아이템을 이서영의 앞에 게워냈다. 그들이 분업이라도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우스웠다.


<이젠 아예 둘이 맞교환해요?>

<당장 쓸데가 없어 보이는 것만요.>


그런데 이서영은 평소와 달리 그걸 바로 삼키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서 한동안 꾸물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곧 은은한 빛이 그녀를 감쌌다.


<무슨 일이에요?>

<방금···원한 등급이 올랐어요.>


그러고 보니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변해 있었다. 상자는 전보다 미세하게 커진 상태였고, 상자 겉면의 장식도 더 화려해졌다. 상자 옆면의 저 무늬는···‘샤X?’ 이서영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건가.


<네. 이제 내 이름을 지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서영이 이름 아닌가. 그녀가 내 의문을 눈치챈 듯 덧붙였다.


<유일 등급이 됐어요. 완전히 차별화된 존재가 돼서, 별도의 이름이 필요한 모양이에요.>


일반 다음이 중급과 상급, 다시 그다음이 유일이다. 유일 단계의 게이트키퍼는 더 이상 미믹이나 라이칸스로프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 이름을 그릇 삼아 원한이 쌓이거나, 산산조각 깨어지기도 한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의 세부 능력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게이트몬스터 : S-103920101. 미믹]


【분류】 잡몹

【등급】 유일

【원한】 [1/5]

【스킬】 저장 강박 LV. 16 시재 점검 LV. 18 공평한 교환 LV. 18


<세상에 대체 원한 수치를 어떻게 쌓았어요? 며칠 만에···.>

<내 안에 유경수가 있어요.>


그걸로는 설명이 안 된다. 물론 유경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락스미스다. 게다가 강한 락스미스를 제압하면 그만큼 원한 수치도 크게 오른다고 돼 있다. 그렇다해도 그는 아직 ‘실버 키’도 손에 넣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우선 유경수가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설명해 줄게요.>


그녀의 말을 정리하면 유경수의 의식은 완전히 멈춰있다. 냉동인간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유경수를 꺼내놓으면 자재 창고에서 쓰러트렸을 때와 똑같은 모습의 변태 싸이코로 돌아올 거란 뜻이다.


<게이트 몬스터를 관장하는 시스템은···그걸 제가 감히 어떤 신의 질서라고 해도 될까요. 어쨌건 그 변태같은 질서에서는 적을 제압하는 것보다 고문과 살인 등의 행위가 원한 수치를 쌓는 데 훨씬 유리해요. 맞죠?>


실린더를 열심히 ‘눈팅’한 바에 따르면 그녀의 말이 맞는다.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고 싶다면 인간을 고문하고 살해하면 된다. 하지만 그건 빨리 인간이 되는 법이 아니라 빨리 게이트 몬스터가 되는 길일 뿐이다.


<설마···.>

<믿어줘요. 유경수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건 아니니까.>


유경수를 삼킨 행위에 대한 ‘판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게이트 몬스터를 관장하는 시스템-나로서는 그것이 생명체의 섭식인지 종교적 규칙인지 알 수 없지만-은, 이서영이 유경수에게 끝없이 고통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이서영이 믿어달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도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면 유경수를 잠시만 내보내 줄 수 있어요?>

<문제없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이서영의 경첩이 열렸다. 전보다 훨씬 커진 상자 안에서 사람의 형체가 쏘아지듯 나왔다. 상자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딱 한 가지 변한 게 있었다. 그의 몸은 흑, 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작았다.


“안현중?”


작은 유경수가 경악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원래 작았다. 아니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거꾸로 크게 만드는 타고난 소인배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열쇠를 소환했지만, 제 몸만 한 크기의 흑과 백의 몸통 박치기에 나가떨어졌다.


"잘 들어요, 차장님."


그래, 지금은 당신이 원하는 존대말이 필요할 때다.


“나는 당신을 죽일 겁니다.”

“뭐?”

“당신이 죽인 사람들의 넋을 달랠 겁니다. 그게 바뀐 세상에 맞는 내 판단입니다.”


유경수는 뒷걸음질 쳤으나, 흑과 백이 그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그는 매우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짐짓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에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기로 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알량한 위선 때문일 거예요.”


유경수의 등 뒤에 서 있던 이서영이 입을 크게 열었다가 닫았다. 탁. 그러자 유경수는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중국 사극에서 개작두 치는 소리 같은 걸.


“하지만 나는 비겁한 놈이니까 그런 위선을 좋아합니다. 이제 몇 가지 물을 테니 솔직하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그는 고개를 열정적으로 끄덕였다. 살길이 열렸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저 안에서 괴로움을 느꼈습니까.”

“내가 저 안에 있었어?”


유경수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이서영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마지막 기억이 무엇입니까.”

“라이칸스로프···너와 싸운 것.”

“법이 당신을 심판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을 저 안에 가둬두겠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상자 안에서의 일은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동의합니까.”


어차피 선택의 가짓수는 없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이건 어쩌면 나를 위한 선택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를 용서하지 않지만 단죄하지도 않고, 그저 이 모든 것을 유예하기 위해서.


“저 안에서 반성해요.”


말을 마치자마자 미믹의 경첩이 다시 열렸다.


“나를 봐라.”


미믹이 된 이서영의 육성肉聲. 상자 전체의 떨림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 같았다. 이 또한 유일 등급 게이트 몬스터부터 주어지는 권한. 유경수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서영은 서늘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유경수다. 내 안에서 부디 이 이름을 곱씹고 원망하길 바란다.”


이서영, 그러니까 유일 등급 미믹 유경수가 유경수를 삼켰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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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P 25. 데스나이트 서태상 (2) 22.09.07 4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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