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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몹이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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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0 14:03
최근연재일 :
2022.09.26 21:11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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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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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글자수 :
179,806

작성
22.08.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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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 09. 잡몹들의 목숨 건 어그로 (3)

DUMMY

‘바리 게이트’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고 부장은 의욕이 하나도 없는 눈빛으로 데스크톱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황 과장은 오늘도 미어캣처럼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간밤에 그런 난리가 벌어졌던 회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어제 야근이 빡셌나 봐?”


황 과장이 넌지시 말했다. 힘들기야 했지. 밤새 한숨도 못 잔 데다 엄청난 일들을 연이어 겪었더니 온몸이 쑤시고 졸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곧 주변이 소란스러워졌고 황 과장이 호들갑을 떠는 통에 잠이 확 달아났다.


“대표님 오십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고명태 대표는 사람들을 우르르 끌고 나타났다. 먼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고 대표의 삼촌 양 이사가 보였다. 거기에 오늘은 다른 부서 사람들 몇몇도 줄줄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고 대표가 다가오자 평소와 달리 이상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도망가거나, 아니면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게이트 몬스터에게 각인된 위험신호 같은 것이 발동하고 잇는 것 같았다.


‘그냥 확 들이받아 버릴까.’


안절부절못한 마음에 덤벼야겠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당해내지 못할 게 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장 약한 락스미스의 열쇠는 금빛이다. 역량이 쌓일수록 은색, 보라색, 적색, 흑색 순서로 바뀐다. 저 정도면 금빛은 절대 아닐 것 같았다.


“유 차장은 출근 안 했나?”


고 대표는 나타나자마자 유 차장부터 찾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였고, 고 부장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고 대표가 우리 팀에 방문한 건 아무래도 약속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그녀를 대신에 황 과장이 대답했다.


“차장님은 외근 나가신 것 같습니다.”


고 대표는 요새 볼 때마다 얼굴에 생기가 넘쳤다. 원래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요즘에는 피부도 점점 매끈해져서 삼십 대 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락스미스가 되면서 생긴 변화일까.


“그럼 유 차장에게는 나중에 공지하지.”

“뭘요?”


고 부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고 대표는 제 동생이기도 한 고 부장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마치 사무실의 모든 사람에게 들으라는 듯이 쓸데없이 큰 목소리였다.


“팀 개편을 좀 했어요. 미리 말씀 못 드렸지만, 꼭 필요한 개편이니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고 대표는 줄줄이 자신을 따라온 이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자재과 백윤태 차장, 마케팅팀 정지희 대리, 서윤지 사원. 사무실에는 잘 나타나지도 않는 고 대표가 마치 행진이라도 하듯 저들을 데리고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기 황재영 과장이랑 양현중 대리까지 총 다섯 명을 영업 2팀으로 배정하고, 고 부장이 이 친구들 맡아서 일 처리를 좀 해줘요.”


“유 차장은요?”

“유 차장은 출근하면 영업 1팀으로 옮기라고 해줘요.”


고 부장은 대놓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대꾸하지는 않았다. 고 대표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주먹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고 중얼거렸다.


“저 개새끼, 나를 쓰레기 취급하다니.”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늑대의 귀를 가지고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생생하게 들렸다. 그녀가 화를 낼 만했다. 고 대표는 이 환난의 시대에는 각성해서 락스미스가 되는 것도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봤다. 반면 평범한 인간으로 머문 이들은 모두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새로 영업 2팀에 배정된 이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이었다.


“유 차장 짐은 누가 1팀으로 옮겨놔요.”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자원하자 고 부장은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만 까딱였다. 만사가 귀찮은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이 오기 전까지 그녀는 의욕이 넘치는 인간이었다. 무능해서 ‘바리 게이트’의 그늘에 모여든 다른 가족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하지만 게이트가 열린 세상에서는 무능한 주제에 야심만 많았던 그녀의 가족이 더 잘 나갔다. 락스미스가 된 고씨 일가는 모두 그녀보다 중용됐다.


‘그렇게 기를 쓰면서 일하더니, 결국 나랑 처지가 똑같네, 뭐.’


짐을 챙겨서 영업 1팀으로 갔다. 고씨 가족을 비롯해서 사내의 락스미스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영업은 무슨 놈의 영업...'


딱 봐도 일할 사람은 없었다.


‘아직도 고 대표가 내부고발 때문에 당신을 쫓아내려 한다고 생각해?’


유경수가 했던 말이 이런 뜻이었나. 바리 게이트가 매출 130억 남짓의 작은 중소기업 시절과는 업계도 세상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 대표는 영업이나 기술 개발보다는 락스미스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영업 2팀에는 퇴출 대상을 모아놨구나.’


당연히 제대로 된 업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영업 2팀은 사무실에서 각자 시간을 죽일 뿐이었다. 나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유 차장의 컴퓨터를 내 자리로 옮겨놨다. 그러려고 짐 옮기기를 자원했으니.


‘오늘도 야근을 자원해야겠어.’


하지만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 돌아온 고 부장이 회사의 결정 사항을 공지했다. 그녀는 앞으로 영업 2팀이 맡게 된 업무를 소개했다.


“뭐라고요?”


기가 막힌다는 듯 언성을 높인 건 정지희 대리. 어떤 경우에도 지지 않고 대드는 투쟁 본능으로 마케팅팀 이외에 다른 부서에도 소문이 나 있었다. 고 부장도 내게 쏘아붙일 때와는 달리 차분히 다시 말했다.


“내일부터 영업 2팀 업무는 회사 설비를 지키는 것입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니 다른 팀원들도 하나씩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건 경비업체가 하는 일이잖아요.”

“그럴 거면 우리가 영업팀일 이유가 있나요?”


고 부장은 아무런 대꾸없이 팀원들이 제 풀에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잖아도 직제표 상에서 우리 팀 이름부터 바뀌었습니다.”

“팀 이름이요?”

“앞으로 우리 팀은···”


고 부장은 말끝을 흐렸다. 너무 작게 말해서 그건 내 귀에만 들렸다. 안 돼. 맙소사 그런 이름은 안 돼. 나는 지금이라도 달려가 고 부장의 입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이 자리 최선임자인 백윤태 차장이 답답하단 듯 되물었다. 뭐라고요?


“바리 게이트 수비대라고요!”


좌중에 조용히 앓는 소리가 번져갔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장 수치스러운 건 누굴까. 나는 고 부장에게 말했다.


“수비대장님, 시설, 자재 목록은 오늘 제가 야근하면서 작성해두겠습니다.”


한쪽 무릎을 굽힌 인사까지 하려다가 참았다. 옆에서 황 과장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억누르는 듯 끅끅대는 소리가 들렸다. 고 부장은 마치 끔찍한 벌레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안 대리.”

“예.”

“앞으로 나를···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 절대로.”

“네 대즈···네.”


고 부장을 알게 된 이후 가장 무서운 눈빛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불러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쉬워서 오늘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


“회사까지 오는 데 힘들진 않았니 흑?”


떠돌이별의 심장을 뱉어내고 헥헥거리는 흑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모두 퇴근한 후라 사무실은 조용하고, 또 외로웠다. 흑의 검고 부드러운 털을 만지는 데 안도감이 밀려왔다. 고작 하루 전 나는 여기에서 유경수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내가 라이칸스로프라서 도와주는 거니?”


‘알파의 자격’이라는 기술의 정확한 원리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보다 강한 게이트 몬스터는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냉정히 봤을 때 오크 같은 것들보다 월등히 강력한 흑, 백, 적은 왜 부름에 응했는지 궁금했다.


“아무렴 어떠냐, 고마워 흑.”


유 차장의 자리에서 떼어온 컴퓨터를 켜고 ‘떠돌이별의 심장’을 손에 쥐었다. 커뮤니티 실린더는 여전히 잡몹에 대한 검색 결과를 필터링하고 있었다.


no. 15489. 몇 달 전에 최아인이 지역 게이트키퍼 잡는 거 봤는데 옆에서 알짱대던···


삭제대기 중인지 글은 열람할 수 없었지만, 미리보기로 글 내용이 일부 보였다.


↳···게이트키퍼 잡고나니까 아울베어 한 마리가 사람으로 변했어. 걔네 변신 스킬 씀?


쓸 리가 없지. 그 아울베어는 잡몹이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잡몹이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게이트키퍼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이서영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잘 됐어요! 그러면 된 거잖아요. 3레벨 게이트도 언젠가 닫힐 테니까 기다리면 락스미스들이 게이트키퍼들을 해치워줄 거예요.>

<아니요.>

<네?>

<마지막 페이즈엔 월드 게이트키퍼 바이자르가 게이트 밖으로 나서요.>

<그때 우리도 다 끌려간다면서요.>

<그래요. 지역 게이트키퍼들도 다 동원돼서 전쟁을 방불케하죠.>


1레벨 게이트 4페이즈에 들어서자, 게이트키퍼와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던 게 떠올랐다. 그것들은 1~3페이즈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큰 피해를 끼쳤다. 그래서 2레벨 게이트 4페이즈에 락스미스들은 전략을 바꿨다.


<강한 락스미스들이 힘을 합쳐, 월드게이트로 닥돌했죠. 기억나죠? 지역 게이트키퍼들이 모일 틈도 주지 않고 월드 게이트키퍼를 제거한 거예요.>

<그러면 된 거 아니에요?>

<아녜요. 모든 게이트가 닫히고 그때까지 살아있던 지역 게이트키퍼들은 모두 원래의 세계, 디스월드로 귀환했어요.>

<네?>

<우리를 속박한 게이트키퍼가 디스월드로 귀환하면 우리는 인간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는 거죠.>


사실이다. 실린더와 관련 기사들을 교차검증한 결과였다.


<락스미스 협회에 솔직히 말하면 어때요?>

<그것들···다 알고 있어요. 잡몹이 사실은 사람이라는 걸.>

<그럼 왜 모두 침묵하는 거예요?>

<락스미스들은 항상 열쇠조각에 목말라 있거든요.>


다음 순간 이서영이 침묵했다. 크게 충격받은 것 같았다. 나는 실린더에서 관련 글을 처음 봤을 때 모멸감과 두려움에 떨었다. 사냥당하고 도축되는 것. 그런 것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서영의 반응은 달랐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우리 더 강해져요.>

<네?>

<잡몹도 락스미스를 쓰러트리면 더 강해진다고 했죠?>


락스미스들의 커뮤니티에도 자세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게이트 몬스터가 상대를 제압하거나 고문하거나 죽일수록 원한 수치를 올릴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원한 레벨을 다 올릴 때마다 다음 등급으로 상승하고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것도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일반, 중급, 상급, 유일, 게이트키퍼 단계를 거치면 월드 게이트키퍼도 될 수 있죠.>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일반 몬스터 등급 상승조차 보고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지역 게이트키퍼를 처리할 정도는 강해지는거예요.>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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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 27. 데스나이트 서태상 (4) 22.09.12 55 1 11쪽
26 EP 26. 데스나이트 서태상 (3) 22.09.08 48 1 10쪽
25 EP 25. 데스나이트 서태상 (2) 22.09.07 49 1 11쪽
24 EP 24. 데스나이트 서태상 (1) 22.09.04 52 1 12쪽
23 EP 23. 때론 사냥감도 사냥에 나선다 (3) 22.09.02 6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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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P 21. 때론 사냥감도 사냥에 나선다 (1) 22.08.31 7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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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P 18. 잡몹 각성하다 (3) 22.08.28 84 2 12쪽
17 EP 17. 잡몹 각성하다 (2) 22.08.22 74 2 10쪽
16 EP 16. 잡몹 각성하다 (1) 22.08.19 8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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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P 14. 잡몹 아지트 '리젠' (3) 22.08.17 90 2 11쪽
13 EP 13. 잡몹 아지트 '리젠' (2) 22.08.16 10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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