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나르21 님의 서재입니다.

나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나르21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2.08.24 21:00
연재수 :
98 회
조회수 :
17,740
추천수 :
131
글자수 :
492,474

작성
22.08.23 21:00
조회
90
추천
1
글자
12쪽

97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6)

DUMMY

마신의 오두막, 방금 내려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나는 검붉은 커피가 담긴 잔을 든 마신이 오두막에서 나와 언제나처럼 의자에 앉는다.

호! 호! 커피가 담겨 있는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 두세 번 불어 커피를 식히곤 한 모금 가볍게 들이켰다.

맛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어 보인 마신 하데스가 잔을 내려놓으며 멀리 한 곳을 바라보다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한다.


“크크크! 또다시 강해지고 있구나. 느껴진다. 너의 강함이. 그래 강해져라. 강해져서 나를 죽여라! 인간이여. 나와 같은 암흑을 품은 자여. 즐겁구나. 즐거워. 크크크! 내가 죽고 난 후 창조주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보고 싶구나. 똥 씹은 그 얼굴을 말이다. 크크크!”


검에서 한 치(3cm) 떨어진 나뭇가지를 베기까지 걸린 시간, 일 년 하고 두 달.

다시 일 척(30cm) 떨어진 돌멩이를 베기까지 이년.

강수는 조금씩 강해져 갔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지나간 시간 때문일까? 강수는 순간순간 머리가 아팠다.

왜? 그리 강함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복수에 그리도 집착하는지,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마다 강수는 이제는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점점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의 미려를 부여잡으며 검을 잡아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의 의미를 잃어버릴 것 같아 아주 힘껏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다시 삼 년이 흘러 강수는 일장(3m) 정도 떨어져 있는 나무를 베게 되었다.

기쁘지 않았다.

의미를 잃었기에.

시간이란 그렇게 강수의 기억을 하나하나 망각의 길로 인도해 소멸시켰다.

그 어떤 기억이라도···.


강수는 혼자가 되고 처음으로 손에서 검을 놓고 이곳 마계를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보았다.

왜일까? 강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삭막했다.

주위에 있는 나무와 풀들은 언제 생명을 잃은 것인지 그냥 자라 있을 뿐, 그 어느 곳에도 생명은 없었다.

단지 누군가의 상상 속에 있는 것과 같이···.

강수가 그렇게 느끼는 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그리곤 시궁창 냄새보다 더 심한 악취가 났다.

풀과 나무들이 사라진 곳에 오물과 괴물들의 사체(死體)가 뒤엉켜 썩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강수는 구역질이 났다.

자신이 마시던 물과 나무의 열매도 모두 썩은 오물과 괴물들의 사체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다 지난 일, 지금 구역질을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참았다.

대신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뱉었다.

그 순간 누군가 옆에 서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말을 했다.


“넌 이제 인간이 아니구나. 나의 세계를 무너트리다니. 크크크! 어떤가? 신의 영역에 발을 디딘 자여!”

“더럽다.”

“크크크! 그런가. 하긴 내가 좀 더럽긴 하지. 그래도 나름 잘 꾸며놨는데, 그걸 네가 다 부셔놓고 말았구나. 이제 어쩐다.”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그건 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그건 내 마음에 달린 문제지. 알겠나? 인간···. 아니 이제는 인간이 아닌가? 음∼ 모르겠군. 하여간 그건 내가 정한다. 싸우고 안 싸우고는.”

“그런가? 그럼 죽여라. 더는 이곳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순간 마신의 표정이 굳는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찾으며,


“그냥 너를 죽이는 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난 너와 싸우고 싶다. 그러니 검을 들어라.”


강수를 자극하듯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피식! 초연한 강수의 두 눈이 마신을 외면하듯 먼 하늘을 바라다본다.


“왜 저러는 거지? 분명 이전까지는 저리지 않았는데. 무엇이 저 인간을 변하게 한 걸까?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어떡하지···. 아! 그랬지. 그게 있었군.”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마신 하데스가 강수를 쳐다본다.


“너의 누이를 다시 느끼고 싶지 않나?”


두 개의 달을 바라보던 강수의 고개가 천천히 마신 하데스에게 향한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나를 죽이면 넌 누이를 느낄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너의 누이를 말이다. 알겠는가?”

“그렇군. 네가 흡수를 했으니, 죽기 전까지의 누이는 네 안에 존재하겠군. 두 분 사부님도···.”

“그렇다. 다 내 안에 있다. 이곳에서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이···. 그러니 나를 죽여라. 그러면 다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어차피 죽은 존재들 아닌가? 귀찮군.”

“왜인가? 왜 갑자기 나와 싸우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의미를 잃어버렸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가?”

“나도 잘 모른다. 단지 너무 오래 산 것 같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군.”


강수에게서 빈 허공으로 시선을 움직인 마신 하데스가“카론!”이라고 외친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순간 마신 앞에 나타난 마족 카론이 한쪽 무릎을 꿇곤 고개를 숙인다.


“부르셨습니까? 마신이시여! ”

“난 너를 시작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니 따르라.”

“네 마신이시여.”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 마족 카론, 곧 찾아올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몸을 떨기 시작한다.

마족 카론의 머리를 발로 으깨려는 듯 마신 하데스가 발을 들어 올린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당황스러운 표정의 강수가 노려보자 들어 올렸던 발을 멈추곤 조금 전과 다르게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강수를 보며 마신 하데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아! 그렇군. 인간에겐 정이라는 감정이 있었지. 그래서 그런 것인가? 크크크! 재미있군. 마족과 인간이 정을 나누다니···. 좋다. 그럼 나와 싸워라. 그럼 이 세계를 파괴하지 않을 테니. 어떻게 하겠는가? 인간이여!”


마신을 노려보던 강수의 두 눈에 땅에 얼굴을 대고 부들부들 떠는 마족 카론이 비치자 안타까운 마음과 여러 감정이 강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 아직 난 인간인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니. 그렇구나. 아직은 인간이구나. 그렇다면···.”


피식!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스르렁! 검을 뽑아 든다.

검을 든 강수를 보며 마신 하데스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슬쩍 시선을 내려 마족 카론을 쳐다본다.


“가라!”

“감사합니다. 마신이시여!”


잽싸게 일어난 마족 카론이 고개를 숙이곤 몇 걸음 걸어가다 고개를 돌려 강수를 힐끔 쳐다본다.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실린 눈으로.

씽긋! 이를 본 강수가 미소를 짓는다.

괜찮다는 듯이.

이에 피식! 미소를 지은 마족 카론이 작게“블링크!”라 외치며 사라진다.

카론이 사라지자 자신을 사랑스러운 연인을 보듯 쳐다보고 있는 마신 하데스를 강수가 지그시 노려본다.


“자∼ 인사도 나누고 했으니 이만 시작할까?”

“그러지.”


말이 끝나는 순간 강수가 사라진다.

검과 마신의 팔이 부딪친다.

강한 빛과 함께 꽝! 하는 굉음이 울리고 이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번쩍이는 빛과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마계의 가장 깊은 곳, 그곳이 요동친다.

찢기고 갈라지고, 하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는 신은 없다.

그곳은 원래 버려진 곳이기에.

그 어떤 신도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창조주조차도.


“크크크!”


마신 하데스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미친 듯이 웃는다.

하지만 왜일까? 강수는 마신의 웃음에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가슴이 아리도록 느껴져 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신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끝을 내야 하기에 강수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마신을 봤다.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지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이제 마지막인가? 기대되는군. 인간이여. 너의 힘이. 크크크!”


검을 잡은 강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마신의 심장을 가르기 위해서···.

천천히 사선으로 움직인다.

아니 움직였다고 느껴졌다.

언제 아래로 내려온 것일까? 검이 강수의 왼쪽 허리 부분에 멈춰져 있고 마신의 웃음소리 또한 더는 들리지 않았다.

자기 심장이 있는 부분을 마신이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게 무엇인가?”

“나의 검이다.”

“그렇군, 고맙다. 인간이여! 나를 죽여줘서.”

“고맙다. 무엇이 말인가?”

“쉬게 해주어서 말이다. 지쳤거든.”

“하긴 신도 감정을 느끼니 그렇겠군. 이곳은 너무 삭막하니.”

“이해해주어 고맙다. 인간이여. 그리고 나를 흡수하면 알게 되겠지만 네가 죽으면 난 다시 이곳에서 부활하게 된다. 그러니 오래 살아라. 네가 사는 만큼 내가 쉴 수 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

“말해봐라. 들어줄 수 있으면 들어줄 테니.”

“나를 잊지 마라. 너에게까지 잊히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알겠는가?”

“노력해보지.”

“크크크! 고맙다 인간. 그럼 난 이만 쉬러 가지.”


말을 끝으로 마신의 몸이 바람에 흩어지고 그 순간 마신의 몸에서 빠져나온 무지막지한 기와 영혼들이 강수의 백회혈을 강타한다.


퍽!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강수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강수가 입고 있던 털옷과 머리카락 그리고 피부가 먼지가 되어 부서져 내린다.

고통 때문일까? 강수의 굳게 다물어진 입에서 신음이 새 나오고 강수의 내부에선 퍽!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입술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찌지직!


흘러내리던 핏물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수의 얼굴에 의해 모두 증발한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마계의 불꽃이 강수의 온몸을 집어삼킨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마계의 불꽃에 휩싸여 있는 강수를 바라보는 마족 카론, 제발 견디기를 그리고 다시 태어나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이곳 마계에 존재한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신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얼마만 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강수는 지금 직접 몸을 통해 알아가고 있었다.

한 달, 마신을 죽이고 한 달이 지나도록 아직도 마신의 기와 영혼들은 강수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언제쯤 이 지겨운 과정이 끝날까? 강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강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 시간은 강수의 생각과는 무관하다는 듯 그렇게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잊어갈 때쯤 드디어 강수의 백회혈로 흡수되던 마신의 기가 퍽! 소리와 함께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끝난 것이다.

마신의 기와 영혼을 받아들이는 일이.

하지만 강수는 깨어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마신의 기와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기에.

다행인 것은 이번 과정은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나를 다시 만나고, 사부님들과 그동안 헤어졌던 많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에,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하나둘 마신의 기억을 엿보기 시작했다.

일 년, 이년 그리고 십 년이란 시간이 흘러갈 동안.

하지만 천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도 강수는 마신의 기억을 엿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방대했기에.

마치 끝이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듯, 마신의 기억은 끝이 없이 강수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강수는 이렇게 가다가는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여 우선 마신의 기억을 의식 너머에 넣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살펴보기로 마음먹고는 곧바로 실행해 옮겼다.

무수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강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번쩍!


강한 빛과 그 빛이 사그라들자 흐릿하게 보이는 주변의 모습.


“혼자인가?”


생각과 동시에 고개를 돌린 강수의 눈에 마족 카론이 비친다.

엉엉 울고 있는···.


“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강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환한 미소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의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시즌1 현세와 마계의 이야기를 마치며. 22.08.25 60 0 -
98 98화. 이곳은 어디지? 22.08.24 91 0 18쪽
» 97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6) 22.08.23 91 1 12쪽
96 96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5) 22.08.22 88 0 10쪽
95 95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4) 22.08.20 121 0 12쪽
94 94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3) 22.08.19 97 0 11쪽
93 93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2) 22.08.18 101 2 9쪽
92 92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1) 22.08.17 104 0 9쪽
91 91화. 혼자 남겨지다. (4) 22.08.16 103 0 12쪽
90 90화. 혼자 남겨지다. (3) 22.08.15 107 0 16쪽
89 89화. 혼자 남겨지다. (2) 22.08.13 106 0 9쪽
88 88화. 혼자 남겨지다. (1) 22.08.12 111 0 12쪽
87 87화. 생과 사 그리고 마신 하데스(Hades). (2) 22.08.11 122 0 16쪽
86 86화. 생과 사 그리고 마신 하데스(Hades). (1) 22.08.10 114 1 11쪽
85 85화. 이별. +2 22.08.09 136 1 17쪽
84 84화. 깨어나다. (2) 22.08.08 122 1 9쪽
83 83화. 깨어나다. (1) 22.08.06 113 1 9쪽
82 82화. 헤어짐의 시작. (3) 22.08.05 112 1 10쪽
81 81화. 헤어짐의 시작. (2) 22.08.04 120 0 13쪽
80 80화. 헤어짐의 시작. (1) 22.08.03 139 0 12쪽
79 79화. 인연(因緣). (2-3) 22.08.02 125 1 13쪽
78 78화. 인연(因緣). (2-2) 22.08.01 139 0 11쪽
77 77화. 인연(因緣). (2-1) 22.07.30 127 0 9쪽
76 76화. 인연(因緣). (9) +2 22.07.29 135 1 13쪽
75 75화. 인연(因緣). (8) 22.07.28 117 0 11쪽
74 74화. 인연(因緣). (7) 22.07.27 120 2 10쪽
73 73화. 인연(因緣). (6) 22.07.26 122 1 14쪽
72 72화. 인연(因緣). (5) 22.07.25 123 1 11쪽
71 71화. 인연(因緣). (4) 22.07.23 120 0 11쪽
70 70화. 인연(因緣). (3) 22.07.22 116 1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