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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21 님의 서재입니다.

나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나르21
작품등록일 :
2022.05.11 12:25
최근연재일 :
2022.08.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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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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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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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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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4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3)

DUMMY

스르렁!


검을 멈춘 강수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곤 멍하니 서 있는 마족 노인을 쳐다본다.


“무슨 일인가요?”

“어! 그러니까 그게···.”


당황했는지 무어라 말을 못 하고 그때까지 잡고 있던 멧돼지의 뒷다리를 확! 잡아당겨 강수의 앞에 던져놓는다.


“이것을 전해 주러 왔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저기요. 근데 저걸 왜? 저에게 주는 건가요?”

“그냥 먹으라고 갖고 왔다. 싫으면 버리던가.”

“아닙니다. 잘 먹겠습니다. 저기 근데 전 드릴 게 없는데···. 혹시 과일 좋아하시나요?”


이해를 못 하는지 마족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강수가 지내는 동굴 입구, 마족 노인과 강수가 앉아 있다.

한 손에는 강수가 이곳에서 주식으로 먹는 과일을 하나씩 들고선.

강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먼저 시범을 보이려는 듯 손에 든 과일을 한입 베어 문다.


“드세요. 진짜 맛있어요.”


거짓말이다.

마족은 마계에 존재하는 보통의 생물과는 다른 한 마디로 인간 세상에서 보면 고위 귀족과도 같은 존재들을 말함이다.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사물을 분별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한 마디로 이지(理智)를 지니 존재들이란 말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행해지는 예의라는 것도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마족 노인은 고민스러웠다.

이전 익힌 고기를 거절했는데, 또다시 강수의 선의를 거절하는 것은 중간계에 한 번 갔다 온 마족으로서 인간들의 예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였기에.


“하∼”


짧은 한숨과 함께,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입 과일을 베어 무는 마족 노인, 입안에 맴도는 시고 단 맛에 인상을 찌푸린다.


“맛이 없으십니까?”

“아니다. 맛있다. 단지 너무 오랜만에 과일을 먹어 그런 것이다.”

“그럼 보통은 생고기만 먹는 건가요?”

“아니다. 마족은 반신이다.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단지 잊지 않으려고 먹을 뿐.”

“근데 인간은 왜 그렇게 먹으려고 난리인 건가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지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당연한 걸 물어 귀찮다는 듯 마족 노인이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창조주가 마족과 마계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만들 때 이미 중간계에 대한 파괴 욕구와 인간 피에 대한 갈망을 우리 내면에 각인 시켜놓았다 들었다. 물론 맛도 훌륭하기도 하고.”

“맛이 있구나. 근데 중간계는 뭔가요?”

“중간계는 이곳 마계와 선계를 잇는 하나의 시공간. 이곳과 전혀 다른···. 두 개의 달과 하나의 해가 뜨는, 그리고 어마어마한 기를 품은 곳이다.”

“어렵네요.”


강수는 이곳 마신이 사는 곳에 온 이후 모두가 죽고 그 누구와도 말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이곳의 시간으로 일 년 하고도 몇 달간, 다시 말해 이전 세계의 시간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마족 노인과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냥 말을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말을 들을 수 있기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서 마족 노인이 고마웠다.

마족이지만 말이다.


“너는 이곳의 존재가 아니니 잘 모르겠지만 중간계는 말로 형형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이다. 꼭 다시 가보고 싶은···. 하지만 갈 수 없는.”

“왜 못 가나요?”

“신마전쟁 이후 창조주가 명했으니까. 마계와 선계는 절대 중간계에 발을 디딜 수가 없다고.”

“그럼 전에 한번은 신마전쟁 때 갔다 오신 건가요?”

“아니다. 인간이 원하면 마계에서도 중간계로 갈 수가 있다. 단 힘의 절반은 상실한 채로.”

“아! 갈 수는 있군요. 그럼 선계는 어떻게 중간계에 가나요?”

“못 간다. 하지만 신의 기운을 인간의 몸에 깃들게 하여 자신을 대변할 수는 있다. 물론 신의 힘을 인간의 몸에 깃들게 하는 대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그럼 마계가 더 좋은 거네요. 마족은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흥! 어떤 인간이 우리를 부르겠느냐? 그리고 부른다고 하여도 계약에 따라 얼마 안 있어 잡아 먹힐 덴데, 뭐가 좋다는 말이냐?”

“그렇기는 하겠네요. 악마를 불러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원한에 사무친 인간이 아니라면 절대 부르지 않겠네요.”

“그래도 아주 가끔 우리를 부르는 인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인간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므로, 마계 특히 마계에서도 가장 깊은 이곳에 존재하는 마족들이 중간계에 간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렇다. 차원을 이동하는 일이기에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야 가능하겠지. 하지만 에너지 말고도 우리의 흔적이 깃든 인간의 피가 매개물로 필요한데, 그것이 지금에 중간계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도마뱀들이 다 죽였을 테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못 가겠네요.”

“흠 그렇다. 못 간다. 그리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단 이곳 가장 깊은 마계에서 벗어나 중간계와 가까운 마계로 갈 수 있다면 인간을 꾀어 기회를 만들 수는 있긴 하다만, 그것 또한 다른 마계를 지배하는 마신들이 원하지 않기에 이래저래 불가능한 일이다.”

“마계가 한 곳이 아니군요.”

“모르고 있었나? 그렇다. 마계는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하데스님이 계신 이곳이 가장 강하다.”

“그럼 혹시 신들도 서열이 있나요?”

“물론이다. 마계에선 하데스님이 가장 서열이 높은 마신이다. 물론 힘 또한 가장 강하고.”

“그렇군요.”

“그러니 더는 싸우려 하지 마라. 그냥···.”

“아니요. 전 싸울 겁니다.”

“왜 죽으려 하는 거지?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신은 신이다. 우리와는 다르단 말이다.”

“제가 살아 숨 쉬는 이유니까요.”


담담한 강수의 두 눈에 마족 노인이 피식! 미소를 짓는다.


“그런가? 알았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 그럼 강해져라. 난 이만 가봐야겠다.”

“또 오실 건가요?”

“네가 원하면.”

“전 원합니다. 또 와주시지요.”

“알았다. 나중에 보자.”


마족 노인이 뒤돌아 걸어가자 노인의 등에 대고 강수가 외친다.


“약속했습니다. 꼭 다시 와야 합니다.”


외로웠기에 꼭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마족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피식! 어이가 없는지 마족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알았다. 다시 오겠다.’


왜일까? 마족 노인은 강수가 싫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좋았다.

자신은 무서워 말조차 함부로 못 하는 하데스에게 막 대하는 강수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약간의 대리 만족을 느껴서일까? 하여간 강수를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마족 노인 카론은 이후 한 달에 한 번 멧돼지나 여러 다른 짐승들을 잡아 강수가 있는 이곳으로 와 마계와 중간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치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자신의 지식을 들려주듯이···.

시간은 흘러갔다.

일 년 이년 그리고 사 년이란 시간이.


푸르스름한 달빛이 비치는 밤, 동굴 입구에 강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오 년, 이전 세상의 시간으로 보자면 오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강수의 모습은 전혀 변함이 없이 이십 대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공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 년 전의 강수와 지금의 강수는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만큼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도 강해지고 있다.


“그렇구나!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얻을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얻어야 한단 말인가? 하∼”


바람이 불어와 강수를 감싸 안아주곤 살며시 흩어진다.

강수의 고뇌와 함께···.


‘나에게 초식이란 무엇인가? 왜 초식대로 검을 움직여야 하지? 초식을 벗어나면 안 되는 건가? 초식을 벗어나면 그건 그 검법이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나와 싸우는 상대는 내가 알고 있는 검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근데 왜 나는 초식에 머물러 있는 거지? 왜···? 버리자. 지금 나에겐 그 어떤 초식도 의미가 없다. 무(無)로 돌아가자. 처음 검을 잡았을 때의 마음으로···.’


마음먹음과 동시에 감겨있던 강수의 눈이 떠지고 떠오르는 붉은 달빛 때문일까? 강수의 눈에서 순간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사라진다.

분명 어제와 같은 강수인데, 왠지 다르게 보인다.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강수가 수련장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어제와 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한 발짝 한 발짝 여유로.


강수의 검이 검집에서 스르렁! 쇳소리를 내며 빠져나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움직인다.

어색한지 강수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이내 검을 이리저리 휘두른다.

자유롭게, 그 어떤 법칙도 없이 그냥 검이 움직이고 싶은 곳을 향해···.


‘그렇구나! 나에게는 초식이 불필요하구나. 바보 근데 그렇게 초식에 얽매였으니···. 아! 편하다.’


강수의 주위로 광풍이 인다.

수십, 수백 개의 칼날이 바람을 타고 주변을 가른다.


‘하나를 버리니 바람을 얻는구나. 가만! 그렇다면 마검 사부님이 마지막에 보여주셨던 검을 얻은 건가? 흠∼ 진작 버릴걸. 뭐에 그리 아깝다고 바보같이···. 이제 그럼 현무 사부님이 마지막에 보여주셨던 검을 얻는 일만 남은 것 같은데···. 또 무엇을 버려야 할까? 하∼ 고민이구나.’


한숨을 내쉬며 동굴로 향한 강수가 동굴 입구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더는 몸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 눈을 감고 길고 험한 깨달음의 길을 혼자 묵묵히 걸어간다.

강수가 눈을 감고 잠시 후 동굴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위에 마족 카론이 커다란 늑대를 한 마리 등에 짊어지고 나타나 강수를 살펴보다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등에 짊어진 늑대를 멀리 던져버리곤 돌아선다.


“이제 나보다 강해졌군. 말도 안 돼. 인간이 나! 카론보다 강하다니. 그래 너의 끝이 어디인지 내가 봐주마. 그러니 끝까지 가보거라 인간이여. 크크크!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크크크!”


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던 카론의 모습은 사라지고 웃음소리만이 주위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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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5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4) 22.08.20 121 0 12쪽
» 94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3) 22.08.19 98 0 11쪽
93 93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2) 22.08.18 101 2 9쪽
92 92화. 혼자가 아니라 미소를 짓는다. (1) 22.08.17 104 0 9쪽
91 91화. 혼자 남겨지다. (4) 22.08.16 103 0 12쪽
90 90화. 혼자 남겨지다. (3) 22.08.15 107 0 16쪽
89 89화. 혼자 남겨지다. (2) 22.08.13 106 0 9쪽
88 88화. 혼자 남겨지다. (1) 22.08.12 112 0 12쪽
87 87화. 생과 사 그리고 마신 하데스(Hades). (2) 22.08.11 122 0 16쪽
86 86화. 생과 사 그리고 마신 하데스(Hades). (1) 22.08.10 114 1 11쪽
85 85화. 이별. +2 22.08.09 136 1 17쪽
84 84화. 깨어나다. (2) 22.08.08 122 1 9쪽
83 83화. 깨어나다. (1) 22.08.06 113 1 9쪽
82 82화. 헤어짐의 시작. (3) 22.08.05 112 1 10쪽
81 81화. 헤어짐의 시작. (2) 22.08.04 120 0 13쪽
80 80화. 헤어짐의 시작. (1) 22.08.03 139 0 12쪽
79 79화. 인연(因緣). (2-3) 22.08.02 125 1 13쪽
78 78화. 인연(因緣). (2-2) 22.08.01 139 0 11쪽
77 77화. 인연(因緣). (2-1) 22.07.30 127 0 9쪽
76 76화. 인연(因緣). (9) +2 22.07.29 13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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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인연(因緣). (4) 22.07.23 120 0 11쪽
70 70화. 인연(因緣). (3) 22.07.22 116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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