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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들어올 땐 마음대로 였겠지만 나갈 때도 마음대로란다. 어서 가.

단편선 and 옛날 글


[단편선 and 옛날 글] 본격 제대로 된 현판 03

정신아는 거울을 본채로 머리를 묶었다. 무려 3주라는 정학을 마친 채 등교하는 날이었다. 사실상 급우들이 옹호해주었기에 이 정도로 끝났지, 잘하면 퇴학당할 뻔했다. 지난 3주 동안은 집에서 어머니에가 나름대로 효도를 했다고 생각한다. 많이 기뻐하셨다.

더불어서 자신의 뒤에서는 남동생인 정근호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생긴 것은 멀쩡한 놈인데 타고난 불효자이다. 학교에서는 일진 행세를 하고, 애들을 괴롭혀서 어머니가 학교에 일 년 중 열 번은 더 가게 하는 놈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출하였다가 정신아에게 붙잡혀 와서 죽도록 쳐맞고 집에 박혀서 개과천선을 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얼굴은 거의 피떡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라면 원래부터 집안에서 거의 독립 개체에 가깝게 행동하였기에 그런 얼굴을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 정도. 우습게도 학교는 같은 학교였다.

정신아가 그동안 굽실대며 괴롭힘을 받던 일진 무리들의 후배인 셈이다. 지난 3주 동안 그런 것까지 모두 고려해서 강하게 훈육시켜 놓았다. 정말이지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해도 200번은 더 했을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었다.

, 정근호.”

…….”

어라? 씹네?”

신아는 머리를 묶고 남은 고무줄을 가져가 근호의 이마에 대고 수십 번을 퉁겼다. 이마에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전혀 아무런 반항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과목 하나라도 반 평균 이하로 나오면 네 신체에서 두 개 이상 있는 기관들이 그 중 하나씩은 모조리 사라질 줄 알아라?”

…… 알았어.”

어라라. 내가 뭐라고 하라고 했지.”

…… 누님…….”

그렇지? 학교 가서 친구들 있다고 그거 잊어먹으면 친구들 보는 앞에서 때려줄 거야?”

…… , 누님…….”

정신아는 근호의 머리를 마구 부벼댄 뒤에 가방을 매고 아주 오랜만에 등교를 시작했다. 문을 닫고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근호는 재빨리 이마를 붙잡고 그것을 어루만졌다.

저 녀석 대체 뭘 잘못 먹은 거야?”

자신이 가출한 사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성격이 바뀐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먹이 강해졌다. 그동안은 자신이 호통을 치면 오히려 겁을 먹고 뒤로 숨기 바빴다. 오늘부터 수업 진도 따라가려면 착실하게 출석해서 수업을 들어야했다. 더 늦기 전에 근호는 가방에 생애 처음으로 자진하여 책을 넣고, 문을 열었다.

근호야, 나는 네가 하는 소리를 다 들었단다. , ?”

 

문 앞에는 악마가 서있었다.

 

**

 

정근호는 얼굴이 떡이 된 채로 등교를 했다. 입에 물고 있는 솜이 피에 가득 절어있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애초에 이름 좀 날린다하는 일진이었기에 어디 가서 맞고 와도 그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아주 흔하디흔한 일이었으니까.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학교 선배들에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진을 물러서야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정기 집회장소인 학교 본관 뒤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바로 아침에 보았던 악마를 또 보고야 말았다.

어라라, 우리 근호 왔네? 너도 꿇어 앉아. 쳐 맞기 전에.”

…….”

정신아의 앞에 일렬종대로 꿇어앉은 무리는 명확하게 학교 일진, 즉 자신의 선배였다. 여자들도 하나같이 얼굴이 떡이 되었으며 남자들은 강냉이가 나갔는지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저 멍. 하루 이틀 맞아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이름 좀 날린다하던 선배들의 얼굴은 절망이었다. 그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본 근호는 그때서야 모든 것을 직감하고 재빨리 옆으로 가 일렬종대로 앉으며 꿇었다. 눈앞에 있는 자신의 친 누나, 정신아는 학교에서 소위 먹는 대호 선배의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빼들더니 그것을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 덩치만 큰 허우대 좋은 대호 선배. 제가 뭐라고 했죠?”

…… 이번 중간고사에서 우…… 우리 애들이 학교 전체 평균을 한 명이라도 못 넘으면 평생 불구자가 될 각오하라고…….”

근데 말이죠, 오늘 조건 하나 더 붙일게요~?”

정신아는 손가락을 뻗어 근호를 가리켰다. 그가 신아의 남동생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 무엇인가 정체모를 공포가 그들을 엄습했다.

저 녀석은 너무너무 불효자라서, 안 되겠네요. 저 녀석은 전교 순위권에서 놀 만한 성적이 나오도록 직, . 가르치세요. 막 때려도 되요. 친누나인 제가 허용합니다.”

정근호는 학교가 인정해주는 꼴통이다. 본인이 공부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한 몫 하지만, 애초부터 태생이 꼴통인 탓도 있다. 본인이 삐뚤어진 것에 성적이 바닥을 기어 다니다보니 공부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놀러다닌 것도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데리고, 대호 자신도 공부를 상당히 못한다. 그런데 직접 가르치라니, 일진을 데리고서 성적을 좋게 내라는 것도 큰 무리수여서 전학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조건이 더 붙어버리니 전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 그 개똥밭의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겠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현실을 보여줄게. 내가. 특히 너.”

정신아는 무서운 눈빛으로 근호를 가리키며 그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손을 뻗어 뺨을 툭툭 건드렸다. 단지 툭툭 건드릴 뿐이었는데, 뺨에 얼얼한 충격이 오면서 이가 흔들려왔다.

넌 아주 제대로 걸렸어. 가출을 했으면 저 멀리 부산 정도 갈 것이지 동네 pc방에서 어기적대다가 잡히냐? 넌 앞으로 모범생이 될 때까지 굴러다녀라. 동생이면 뭐하냐,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지. 그저 남자는 철이 들 때까지 굴러야 돼.”

신아는 씩 웃었다. 아주 사악했다. 그리고서 신아는 일어서 그곳을 떠났다. 일진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자신을 향했으며, 그들의 걸음이 자신을 향했다.

 

 

교실 내에서의 신아는 평범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밝아지고 말이 많아졌다는 것과, 몇몇 무리들이 그녀를 두려워한 채 거리를 벌이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학교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다만 그 무리에 담임이 속했다는 것이 약간 컸지만. 쇳덩이가 얻어맞은 충격은 일생의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잘 가~.”

그래, 내일 보자~.”

신아는 손을 흔들며 친구들과 헤어졌다. 밤 열 시. 야자가 끝난 야심한 시각이다. 그동안은 여자 혼자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여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들과 같이 하교하기 위해 밤 열한 시까지 야자를 연장해서 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던 신아는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에 진입했다. 그리고 누군가 덩치가 커다란 것과 부딪혔다.

?”

눈을 떠보니 조폭들이 길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현판에서 자주 써먹는다면 소재만 모아서 한 번 써봤던 건데.

옛날에 자유연재에 올렸던 겁니다.

허나 3화만에 의욕이 사라져서 무한 연중.

가볍게 쓰기에는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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