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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들어올 땐 마음대로 였겠지만 나갈 때도 마음대로란다. 어서 가.

단편선 and 옛날 글


[단편선 and 옛날 글] 본격 제대로 된 현판 02

정신아는 말없이 집을 나오며 문을 잠갔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당연했다. 경찰에게 쫓기느라 당시에는 인지를 하지 못했는데, 왜인지 모르게 명동에 떨어져 있었다. 명동에서부터 모교인 미주 고등학교까지 무작정 달려온 것이다. 그것도 등교시간에 맞출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유예가 있을 만큼이나 빨리 도착했다. 인간의 체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아의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나 죽어…….’

드래곤으로 태어나 체력적 한계를 수천 년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정말이지 이미 죽었는데 또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신아는 그 소리를 들은 채 혼자 웃었다.

그럼 학교까지 달려볼까.”

…….”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비상식적 체력이었다. 책이 너댓 권이나 든 가방을 매고, 쉬지도 않고 달렸는데 걸어서 삼십 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한 자릿수로 돌파했다. 그리고 드래곤은 역시 죽으려고 했다.

나 진짜 한계…….’

신아는 책상에 걸터앉았다. 항상 일찍 등교하였기에 자신의 뒤로 누가 들어올 지도 대충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소위 일진 그룹은 거의 조례시간 직전에 들어올 것이다. 그 녀석들이 들어오고 나서 담임이 들어와 조례를 시작하기까지의 유예는 약 5.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들을 혼쭐내기에는 너무나도 넉넉했다.

 

잠시 뒤에는 한 명이 등교를 했다. 눈이 마주쳤지만 신아는 피하지 않았다. 자살까지 고려했을 만큼 자신이 없었던 어제와는 다르다. 전신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주보고서 피하지 않는 시선을 느낀, 그 녀석이 말했다.

나 좋아하냐?”

아니야-!!”

평소의 자신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신에 넘쳐나는 정체불명의 자신감은 행동력으로 변했고,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주먹이 녀석의 얼굴을 강타했다.

빠악!

안면에 엄청난 괴력의 펀치를 허용한 녀석은 제자리에서 두 바퀴나 빙글 돌더니 그대로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는지 상체가 무너지듯 쓰러지기 시작했다.

안돼!”

신아는 얼른 녀석의 상체를 붙잡았다. 그리고 관절을 곱게 접어주며 마치 일찍 왔지만 할 일이 없어서 책상에서 엎드려 잔다.’라는 의도가 풍겨나는 자세를 잡아주었다. 겉모습은 대충 그럴싸했고, 신아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

신아야……?”

?”

교실의 후문에서는 모든 광경을 목격한 무리가 세 명이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지명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무리들. 신아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

 

 

잠시 뒤에는 각자 자리에 앉아 엎드린 채로 자고 있는 녀석들이 무려 반 정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아는 대걸레를 빨아서 바닥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혼자서 구시렁댔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빨리 오냐고.”

네 시계가 고장 난 것 같은데?”

뭐라?!”

잽싸게 왼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보았다. 시계 바늘이 제자리에서 까딱거리고 있었다.

이런 우라질.”

신아! 여고생이 말이 그…….”

?!”

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뒤에서 말을 걸어온 사람이 담임임을 인지했다. 하지만 주먹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잠시 뒤 신아는 코피를 줄줄 흘리는 담임을 끌고 남자 화장실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두 팔과 입을 테이프로 묶어버린 다음에 문을 잠그고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잠깐, . 용용이. 너 무슨 용이냐?”

나 말인가? 패룡(敗王)이라고 불렸지.”

…….”

패룡이라고 해도 한자가 다르다, 한자가. 그 흔한 이고깽에서 마음씨 착한 골드드래곤이나 실버드래곤 많은데 왜 하필 잔악무도한 패룡이란 말인가. 덕분에 여고생의 몸을 하고서 자신도 말보다 주먹이 빠르게 성향이 옮아버렸다.

담임을 깨끗하게 처리한 채로 화장실에서 옷깃에 묻은 피를 닦아낸 정신아가 교실로 들어갔을 때, 이미 그 안은 터질 것처럼 바글바글대고 있었다.

엎드려 자는 애들 이상 없고.’

정신아는 최대한 모르는 척을 하며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순간 뒤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났지만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았다. 조례시간이 지났지만 조례는 시작되지 않았다. 잠시 뒤에는 반장이 일어나 교무실을 다녀왔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신아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정신 나간 애, 이리 와 봐.”

정신 나간 애는 소위 일진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 같은 것이었다. 이 녀석들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은 주변의 이목이 있으니 참아 넘기기 위해, 일어서 그들에게 다가섰다.

?”

-? 너 미묘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신경 쓰지 말고. ?”

네 자리로 가서 의자 봐.”

“?”

신아는 고분고분 자신의 자리로 가서 의자를 보았다. 고양이가 그려진 방석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있었다. 방석을 들춰보자, 반대편에 압정이 찌그러져 있었다.

…….”

엉덩이에서 피 안 나냐?”

, 용용이.”

.”

, 종이 뭐야?”

강철용이다.”

제기랄……. ……. ?”

자신은 인지하지 못해도 신체가 강철 같은 견고함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에게 쳐맞은 수많은 급우들과 담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신아는 다급하게 일어서 엎드려 자는 척하는 녀석의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까봤다. 완벽하게 정신을 잃어버렸다.

……. ……. 나한테 깃든 걸 후회하게 해줄 거야.”

이미 후회하고 있어.”

내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 파열이다.”

제발.”

그래. 어차피 정학 먹을 거……. 한 번 화끈하게 가보자.”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지났다. 신아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어졌다. 이 사건 탓에 고졸로 가방끈이 끊나버리면 격투기 선수라도 하면 되겠다 싶었다. 뭣하면 미국 가서 총질해도 안심. 부족한 밀리터리 지식 덕분에 소총으로 쏴봐야 강철에 별 수 있겠나 싶었다.

 

그렇게 교실에는 피바람이 몰아닥쳤다.

 

개교 이래 첫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신아가 받을 처벌에 대한 법적 소송까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기에서 신아보다 계급이 낮은 빵셔틀이 반전을 일으켜, 소위 말하는 일진들에게 그동안 당해온 숱한 수모와 동질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대거 포섭, 이것이 정당방위였음을 증명했다. 인터넷 상으로도 크게 이슈가 되어 처벌 반대 서명까지 일어났다.

 

신아는 며칠 만에 기쁜 마음으로 등교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보며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라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에게 한 대씩 두들겨 맞고서 며칠 만에 정신을 차린 급우들과 얼굴에 붕대를 감은 담임이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정학.”

제기랄--!!!”


댓글 2

  • 001. Lv.52 K.S

    13.01.28 23:21

    이름이 신아네요?

  • 002. Personacon 엔띠

    13.01.29 10:02

    @.@
    눈치를 채셨군요...
    신아라는 이름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세상의 종말 이후에나 나옵니다...
    아무튼 정말로 중요함. 하지만 본제현과는 관계 없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작명이 귀찮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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