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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들어올 땐 마음대로 였겠지만 나갈 때도 마음대로란다. 어서 가.

단편선 and 옛날 글


[단편선 and 옛날 글] 본격 제대로 된 현판 01

정신아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쉽게 말해 수능이 일 년도 채 안 남은 예비 수험생이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한강 다리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했다. 덕분에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항상 놀림을 받았다.

덕분에 그녀는 엄청나게 소심했으며, 소위 일진이라 부르는 것들의 타겟이 되기 십상이었다. 지난 겨울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에 어머니가 겨우 사준 패딩은 일진 아이들에게 빼앗긴 채로 겨울을 덜덜 떨며 나야했다. 다행인 점은 학교가 늦게 끝나고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어머니는 고된 일덕에 주무시고 아침에는 자신의 등교보다 일찍 출근하시기에 패딩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한계였다. 근본부터 썩어빠진 일진들에게 매 맞고 빼앗기다 못해 이제는 어머니의 욕까지 듣고 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택한 것이 자살이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이가 어려 보험조차 들지 못했다. 2년만 더 살면 보험이라도 근사하게 어머니 이름 앞으로 가입한 다음에 죽을 텐데, 앞으로 그 녀석들 아래에 깔린 채로 2년은커녕 고등학교를 멀쩡히 졸업할 자신도 없었다.

불효자식은 먼저 갈게요.’

슬쩍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정도로 신아의 몸은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살을 에는 정도로 찢어지듯 지나갔지만 오히려 따뜻했다. 그렇게 그녀는 눈을 감았다.

 

 

신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벽과 천장, 그리고 새하얀 바닥에 새하얀 침대 위에서 새하얀 이불을 덮은 채로 새하얀 옷을 입고 누워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혹시나 죽었나 싶어서 머리 위를 만져보았지만, 링은 만져지지 않았다.

그럼 살았다는 건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보았지만 두 다리도 굳건하게 땅에 닿아있었다. 생각해보니 떨어지는 도중에 혼절해버려서 강에 빠진 기억이 전혀 없었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자신이 강물에 빠졌다는 흔적은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어흠.”

누구세요?!”

신아는 말을 하고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는 수염이 사타구니까지 닿은 장엄한 포쓰의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들고 다닌다면 불법무기소지 죄로 잡혀갈 만한 장검 한 자루를 땅에 박아 넣은 채로 앉아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누구냐니까요?”

내가 누구인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데요?”

……. 네 이름이 정신아렸다?”

아니 제 이름 아는 거 자랑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구냐구요.”

허허. 당돌한 애로구나.”

아니 누구냐구요. 관등성명 몰라요? 젊어서 군대 안 갔다 오셨어요?”

넌 싸가지를 모르는구나.”

아니 죽으려고 투척한 애를 붙잡아서 살리니 막 말 듣는 거예요. 그냥 죽이시던가.”

…….”

누구냐구요.”

너 혹시……. 드래곤이라고 하는 존재를 믿냐?”

저 중2병 아니라서 그런 거 안 믿어요. 지금도 왕따인데 그런 거까지 믿으면 어떻게 해요?”

……. 아니, 안 믿어도 있거든……. 그게…….”

아니 그게 뭐가 중요한데요? 누구냐구요?”

내가 드래곤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해야겠니?”

아니 그럼 말을 해야 알지, 제가 혼자서 척척 알면 점쟁이를 하지 왜 수험공부를 해요?”

…….”

아니 그래서 용건이 뭔데요. 저 빨리 죽으러 가야되거든요? 이러다가 살아있는데 등교시간 되면 저 개근상 받으려는 마음에 출석해야 되거든요?”

죽을 생각이 없었구나…….”

아뇨? 그렇게 되면 하교하고 나서 다시 자살할 건데요?”

그럼 출석은 왜 하는데?”

개근상 받아야 되니까요. 대학 갈 때 원서에 그거라도 써야죠.”

죽을 거라고 하지 않았냐.”

안 죽었으니까 그렇죠!”

 

아무튼. 저 살려낸 목적이 뭐에요?”

…… 평생의 소원이 이계를 가보는 것이었는데. 수천 년 동안이나 연구했음에도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대신에 이계의 존재인 너를 소환하는 것에는 성공했구나.”

아니 자살하려고 떨어지는 애를 살려요? 기가 막힌 타이밍이네.”

……. 너는 그…… 이고깽이라는 단어를 모르냐?”

알기는 하는데 아는 체 하면 중2병이라는 소리 들을까봐 모르는 체 하는데요?”

그거 되고 싶지 않냐?”

~. 여기서 심장 떼 주고 신이 벼린 검을 주시게요? 근데 저 여자라서 피 못 보고 또 내년에 수능 보는데 어디 가서 그딴 짓 하고 놀아요?”

아니…… 그게……?”

또 그런 검 들고 다니면 불법무기소지 죄로 잡혀 들어가거든요? 또 신의 힘 얻었네 우왕굳하면서 그동안 저 괴롭힌 일진 애들 때리면 정학 먹거든요? 대학 갈 때 아주 불리한데다가 저희 집은 그런 거 합의해줄 돈도 없거든요?”

아니…… 내 말 좀……?”

또 강해져서 뭐해요? 미국 가서 용병질이라도 할까요? 근데 신의 검 있어도 총 맞으면 죽지 않아요? 그도 아니면 프로 격투기 선수? 저 여자라구요? 왜 저 부르셨어요? 이고깽이 꿈인 남자들 많은데.”

아니…….”

한 명 소개해 드릴까요? 제 아래에 빵 셔틀 하나 있는데 걔가 중증 중2병이라서 이고깽 되게 좋아해요.”

…….”

드래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살짝 들어 올린 눈빛에서 살기를 넘어선 드래곤 피어가 살짝 뿜어졌다. 그것을 마주한 정신아는 전신이 마비됨을 느꼈다. 태어나서 진심으로 느껴보는 진실 된 공포였다. 이제야 정신이 확 들어온 신아는 잘못이라도 빌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턱은 덜덜 떨리기만 할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는 광채가 뿜어지더니 전신을 휘어감았다. 그리고는 마주보는 이를 제자리에 주저앉게 만드는 드래곤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정신아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미친 듯이 떨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자신이 미쳐서 내뱉은 말을 후회했다.

너는…… 용서받지 못할 줄 알아라…….”

신아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을 질끈 감는 것밖에 없었다. 죽음이 현실화되니 죽음이 두려워졌다. 매일 같이 매 맞고 부모 욕을 들어도 살아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아무리 싫어해도…… 난 너한테 다 주고 갈 거야. 나 이미 죽었거든.”

……?”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드래곤의 몸이 빛나는 광채로 변하더니 자신의 몸을 감싸는 장관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분명 이고깽이라고 했잖아?”

그랬지.”

. . . 이계진입 고교생 깽판물! 근데 왜 날!”

정신아는 자신의 내면에서 대화가 가능해진 드래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현대에다가 되돌려놓은 건데!”

---!!!

저 멀리서는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달려오며 외쳤다.

 

 

거기 너! 길거리에서 그런 칼을 들고 다녀? 불법무기소지 죄!!! 거기 서!!!”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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