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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들어올 땐 마음대로 였겠지만 나갈 때도 마음대로란다. 어서 가.

단편선 and 옛날 글


[단편선 and 옛날 글] 약 빨고 쓴 미친 겜판소 '주인공은 NPC 1/2'

 

내 이름은 티올라. 아라만 대륙의 제일 강대국인 고르센의 수도, 베시린에서도 내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는 처녀다. 매일 아침 내 얼굴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남정네가 널리고 널렸다.
 
나는 내 외모가 그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 처지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0과 1로만 이루어진 세상. 내 정체는 바로 3세대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인 로르드에 널리고 널린 Non - Player - Character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NPC
 
 
 
LoRD
 
3세대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기존의 온라인 게임을 가상현실 시스템에 접합시킨 1세대와 2세대와는 다르게, 로르드는 현세를 고스란히 온라인으로 옮겨 놨다.
 
자유도에 있어서 역사상 모든 게임보다 높다. 단순히 마을 밖에서 몬스터를 잡는 게임들과 다르게, 로르드는 마을 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승진을 하고 NPC의 역할을 유저가 뺏을 수 있다.
 
직장을 잃은 NPC는 마을의 부랑자가 되거나, 혹은 산으로 들어가 산적집단의 보스급 몬스터로 성장한다. 나도 그러한 처지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허나 그러지 않는 것에는 내 외모가 크게 기여했다. 내 위에 눌러앉은 점장은 유저인데, 로르드에서 성추행이 구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크게 고마워했다.
 
녀석이 내 엉덩이를 매만져도 나는 Ai가 정해놓은 행동패턴에 대해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화를 내거나 따귀를 때릴 수도 없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Ai는 정해져서 행동반경을 정해놓지만, NPC도 자유의사는 지니고 있다. 그것을 밖으로 꺼내놓지 못할 뿐이지, 이미 인공지능에 있어서는 사람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 이른 것이다.
 
점장 녀석이 남들 시선에 보이지 않고 뒤에서 조물조물해대도 나는 어쩔 수 없다. 그저 나를 해고하지 않는 데에 고마움이나 느끼며, 나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내 역할은 장비판매다. 내 직장은 베시린에서도 가장 큰 무기상이다. 나는 무기를 판매하는데, 로르드에서 유일하게 유니크 이상의 등급을 판매하는 NPC이다.
 
그 때문에 매일 자정이 되기 직전이면 내 앞에는 유저들이 몰려온다. 아직 오픈한 지 오래되지가 않아 몬스터를 잡아 구하기 어려운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단순 노가다로 벌어들인 돈으로 구입하려는 것이다.
 
자정이 되는 순간 내가 판매하는 아이템의 리스트는 DB에서 새로이 내려온다. 한 번의 수천 명의 유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별로 달가운 구석이 아니다. 다행이라면, 나는 하나의 입으로 수천 명의 유저와 무리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을 가득 채워서 렉이나 유발하던 유저들이 한순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로르드의 시스템상 NPC가 판매하는 아이템에 구입자가 몰려들면 자동으로 경매가 시작된다.
 
경매가 시작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유니크 등급이 아니라 그보다 더 상위 등급인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이 나왔나보다. 여타 게임과 다름없이 로르드에도 수많은 오토가 있지만, 그들이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골드로도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은 구입할 수가 없다.
 
어지간한 레벨로는 하나의 유저가 소지할 수 있는 골드의 최대치를 아이템의 가격이 넘어서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나는 항상 생각한다. 지금 점장이 날 해고하면 이 무기를 내가 들고 도망갈 수 있을 텐데.
 
도망 가봐야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베시린에서 도둑질이 성공한 사례도 없고, 게다가 NPC는 에픽퀘스트의 중요 인물이 아닌 이상 모두 레벨이 1로 설정되어 있다. 착용이 안 된다.
 
 
 
 
 
내가 파는 아이템은 워낙에 비싸서 그런지, 매일 자정이 아니라면 내게 용무가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내 뒤에서 숨결을 하앜하앜 내뿜는 점장은 이 세상에서 소멸됐으면 좋겠다.
 
앞에서는 웬 꼬마가 날 올려보기 시작했다. 로르드는 사용연령 제한이 15세이고 유저의 겉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라면 필경 NPC라고 봐야한다.
 
“안녕. 꼬마야.”
 
꼬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그냥 씩 웃으며 내 앞에 멀뚱멀뚱 서버렸다. 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쫓아내고 싶지만, Ai가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표정도 웃는 표정밖에 할 수 없다. 참으로 애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저나 이 꼬마는 처음 보는데, 최근에 새로 NPC가 생길만한 패치가 있었던가.
 
“꼬마야. 만지면 안 돼.”
 
이 녀석이 갑자기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에 손을 뻗는다. 훔쳐가 봐야 어지간한 보스보다 더 강한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잡힌 다음에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올 테지만.
 
“아-”
 
“? …”
 
꼬마 녀석이 아이템을 집어 삼켰다. 저 작은 입에 어떻게 그게 들어갔는지도 의문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경비병들이나 반응을 할 수 있지 Ai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제법 고렙으로 보이는 검사가 내 옆으로 다가온 건.
 
“아싸. 성공.”
 
그는 척 보기에도 상당히 고가로 보이는 검을 꺼내더니, 꼬마를 일격으로 베어버렸다. 죽은 꼬마의 모습은 점점 슬라임으로 변해갔고, 슬라임은 죽으며 방금 전 집어삼킨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드랍했다.
 
녀석은 그것을 주웠다. 정당하게 몬스터를 잡고 주은 것이니 경비병들이 제지를 할 리 없었다. 눈뜨고 사기를 당한 것이다.
 
 
 
 
 
제작회사로써도 속수무책이었다. 일개 몬스터인 슬라임에게 마법 내성을 부여해 폴리모프가 안 걸리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폴리모프 자체가 몬스터에게 안 걸리게 하자니 자유도가 떨어진다며 항의가 빗발쳤다.
 
폴리모프를 건 슬라임에게 유혹을 걸어 마을로 끌고 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같은 수법으로 내가 판매하는 유니크와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은 아무런 값도 받지 못한 채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나오는 사기 방지법은 많았지만, 덮어놓고 시행을 하자니 항의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사기를 처먹는 당사자들인 것 같다.
 
그렇게 되자 제작회사는 강경책을 내놓고 말았다.
 
 
 
NPC인 나에게 현존하는 모든 보스를 제압할 수 있는 강함을 주고, 다가오는 이들 중 골드 소지량이 천만 이하인 모든 유저를 죽이도록 설정해버린 것이다.
 
이것들아. 제작자들아. 개발진들아. 나는 티올라란 말이다. 아라만 대륙에서 가장 예쁜 NPC가 나란 말이다!
 
근데 왜! 대체 왜! 내 앞에서 나를 토벌하기 위한 레이드 파티가 모이느냐 말이다! 대체 왜! 대체 누가 나를 잡으면 내가 판매하는 모든 아이템이 드랍된다는 소문을 냈어!
 
난 NPC라고! 레벨이 1이야! 아무것도 안 떨어트려! 제발 나를 토벌하러 오지 마! 난 가냘픈 여자라고!
 
… … 아.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내 엉덩이나 주물러대던 점장을 죽일 수 있게 됐다. 녀석도 유저고, 골드 소지량이 천만 이하니까. 흐흐흐. 좋구나. 근데 안 오잖아? 젠장.
 
누가 나를 구원해주소서! 이 세상의 창세신인 긴가르시온이여!
 
아참. 이 녀석이 제작자구나. 젠장.


댓글 3

  • 001. Lv.29 Tant

    13.01.19 10:36

    긴가르시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002. Lv.49 네라엘

    13.01.19 13:39

    제작자가 너였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003. Lv.52 K.S

    13.01.28 23:07

    이건 뭐야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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