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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애니 리뷰] 한산 리덕스-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그림자

영화가 왜 1000만을 못 넘었는지 알겠다.


한국 영화계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인셉션 등등의 시리즈 이후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주인공의 무의식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 그리고 두려움의 극복.


이것이 한국 영화계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이다.


사실 무의식과 두려움은 또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도 한데 한국영화계가 철학이 빈곤하다보니 이것을 어떻게 서로 연관시켜가며 스토리를 짜주어야 할지 감을 못잡는다.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보여진 배트맨의 무의식은 대승불교 유가행파(유식학파)의 유식철학에 그 기본적인 바탕을 깔고 있다.


심지어 다크나이트에서 인질극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유식철학의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6조 혜능대사의 말을 그대로 현대식으로 변화시키기도 하였다.


인간들은 모두 기존의 선입견에 의하여 인질이 납치범이고 납치범이 인질이라는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이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 것이다.


이처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는 기본적으로 유식철학에 바탕을 깔고 시작하며, 배트맨의 두려움 역시 마찬가지.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나가 되고, 두려울 때 용기가 생기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대승불교의 불이(不二)의 실현이다.


배트맨 시리즈는 서양인, 미국인이 대승불교를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그 성과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고, 그 철학적 수준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영화계가 헐리웃의 이러한 성과물이 너무 부러웠고 우리는 잘 안 된다는 것에서 열등감을 느꼈다는 것.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이후로 한국인들이 두려움을 다루기 시작한 첫번째 영화는 아마 안시성일 것이다.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등장하던 민족영웅은 두려움이 없고 확고한 신념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가 주류였다.


2014년 나온 명량까지는 그러했다.


하지만 2018년 나온 안시성부터 그러한 민족영웅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흔들리는 민족영웅을 만들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다분히 놀란 감독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뿔싸!


문제는 한국인에게 철학이 빈곤하다는 것.


한국인에게 철학이라고 해봤자 유교와 노장철학만 있고, 그러니 엄숙하고 근엄한 아버지상의 민족영웅만 있었지 두려워하고 흔들리는 민족영웅은 다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놀란 감독처럼 두려움을 소화시키려면 어쨌든 서구철학과 대승불교 등을 열심히 공부해야 할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안시성의 양만춘(조인성)은 두려워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그 방법론에서 결국 전통적인 한국의 영웅상 및 엄숙주의-근엄주의로 회귀해버리고 만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한민족 전통의 어떤 신이 체험이다.


갑자기 꿈에서 신선이나 도사가 나타나 문제의 해결책을 알려준다던가, 혹은 어떤 우연한 계기로 확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종의 신선사상이나 선종의 불립문자식 깨달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대승불교의 고급 철학은 신라와 고려 시대 이후로 이미 사라진지 최소한 7,800년이 넘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 선종이다보니 선종식의 깨달음으로 문제의 돌파구를 연 것이다.


그 결과 양만춘은 어린아이의 두꺼비 놀이를 통해 꺠달음을 얻어 문제를 해결한다.(물론 유튜브의 임용한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이건 오히려 고구려 쪽에 불리한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이것을 통해 안시상이 왜 1000만을 못 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관객의 수준은 놀란 감독의 배트맨에 맞춰져 있는데 한국의 수준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선종만 가지고는 대승불교 교학에서 나오는 고급철학을 넘어서기가 매우 어렵다.


자, 그럼 이제는 한산 리덕스로 와보자.


한산 리덕스는 매우 영리한 영화다.


현재 한국영화계의 철학 실력으로는 도저히 놀란 감독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결국 한국인이 현재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신선사상 및 선종이라는 것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초반에 박아놓고 시작을 한다. 꿈을 통해 바다 위에 거대한 성을 쌓는 학익진을 해야 한다고.


문제의 해결방식이 기존의 한민족에게 익숙한 신선사상, 선종의 깨달음에 머물러 있다.


나쁘게 말하면 안시성의 답습이기도 하지만 좋게 보면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파악해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것이다.


딱 손해 안 보고 손익분기점을 넘겨서 최대한 돈을 벌 수 있는 만큼만 버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매우 영리하다.


또한 여기에 혈통적-인종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충, 의 등의 유교 명분을 내세우고, 그 대척점에 있는 일본군은 도덕적 명분론이 아니라 ‘욕망’으로 움직인다는 철학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서 혈통-인종 민족주의의 편협함을 극복하려는 영리함을 보여주었다.


참으로 영리한 영화다. 돈을 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고나 할까.


철학적으로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처럼 우리에게 무언가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사실 놀란 감독처럼 영화를 만든다는 게 미국에서도 몇 십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니 우리가 이런 걸 가지고 못했다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놀란 감독의 배트맨이 준 충격이 너무 크다보니 아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한산 역시 안시성처럼 1000만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물론 그러함에도 그 영리함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


영화를 볼 때 굳이 심오한 철학이 필요할 이유는 없다. 물론 한국의 관객들은 이순신, 양만춘 등의 민족영웅에게서도 브루스 웨인 같은 심오한 철학을 보고 싶기는 하겠지만 아직 한민족의 역량이 그것을 보여줄 수준이 못 되는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꼭 심오한 철학이 있다고 해서 흥행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일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산은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그 정도면 딱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한국영화가 헐리웃 영화의 그 심오한 철학에 대하여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엔터테인먼트라는 정체성에 더 집중을 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족영웅이 꼭 배트맨 브루스 웨인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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